"글쓰는 작업이 고되고 막대한 체력을 요하는 일이긴 하지만 글쓰는 일만이 가장 보람 있고 삶의 의미라는 생각이 들어요. 살면서 나도 이런 저런 상처를 받은 일이 적지 않았는데 이 때도 나를 치유해 준 것은 문학의 힘이었지요." 칠순을 바라보는 원로 작가 손장순씨(69)가 지난 2년여 동안 발표한 중·단편을 모아 소설집 '작두'(범우사)를 펴냈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비롯 '사라진 로그하우스' '나는 불 위를 걸어간다' '세 다리를 가진 여자' '비상' '시간의 그림자' 등 9편의 단편이 실렸다. 인간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의 실체를 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형상화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삶의 불확실성과 인간 실존의 문제를 간결한 필치로 그려낸다. 표제작 '작두'는 기계를 다루는 데 서툰 중년 남성작가가 무녀(巫女)와 사랑에 빠져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는 이야기를 통해 물질문명 속에서 참된 영혼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사라진 로그하우스'는 가보지 않았는데 가 본 것 같은,보지 않았는데 본 것 같은 소위 '데자뷔(dejavu)' 현상을 통해 불확실성이야말로 현대문명을 이끌어가는 신화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작가가 매우 힘든 일을 겪으면서 써낸 것들이다. 암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남편을 간호하고 지켜보면서,또 문학계간지 '라 쁠륨'을 폐간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써 온 작품들이다. "'라 쁠륨'은 문학인들이 가감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잡지여서 폐간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남편의 건강만 좋아진다면 꼭 복간하고 싶습니다." 지난 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작가는 중단편 소설집으로 '대화''불타는 빙벽''물 위에 떠 있는 도시' 등을 출간했다. 이중 1999년에 나온 '물 위에 떠 있는 도시'는 내년 초 미국에서 'A Floating City on the Water'(Homa & Sekey Books)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번역은 중앙대 최진영 교수가 맡았다. "시간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문단에 나온 지 45년이 되어가니 내가 살아온 삶의 무게에 짓눌리기보다 성숙한 내용이 작품으로 계속 표출되었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아직도 시간과의 싸움을 하느라고 열심히 살고 있음을 매일 확인하고 있지요." 손씨는 내년에 열정과 사랑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을 출간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