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만 열면 막말 … 대화는 없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우리 정치에 대화가 실종된 지 오래다.
국회 본회의장에서조차 막말과 욕설이 난무하는 감정싸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치의 본질인 타협은 온데간데 없고 '파당정치'가 판을 치면서 국민의 정치불신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제 단순히 대정부질문 폐지론을 넘어 정치허무주의가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구태청산과 새정치를 기치로 내건 17대 국회가 '거꾸로 가는 시계'가 된 데는 몇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제도상의 대화채널 부재를 들 수 있다.
과거 여야를 잇는 가교역할을 해온 정무장관이나 청와대 정무수석과 같은 대화창구가 지금은 아예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정분리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지만 정작 현실정치에서는 여야간 대화단절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야당이 한번 틀어지면 해소방법이 없다보니 싸움은 막다른 데까지 가고 있다.
실제 참여정부 출범 후 대통령과 야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갈등의 악순환 구조를 형성해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17대 총선 '물갈이'를 통해 막후채널이 대부분 끊긴 것도 문제로 꼽힌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은 공개적인 대화보다는 물밑접촉을 통해 상호 절충점을 찾아온 게 과거 정치의 관행인데 지금은 이게 원천 봉쇄됐다.
막후대화에 나설 정치력있는 인사도 별로 없거니와 설령 있다 해도 이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더욱이 여야의 지도력은 아직도 실험중인 불안한 상태다.
"정치력을 발휘할 사람들이 사라진 것도 문제지만 강경파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누가 뭇매를 각오하고 나서겠느냐"는 한 여권중진의 말이 현 정치권 분위기를 함축한다.
여기에 과거와는 판이한 정당의 정체성과 상대 당의 양보만을 강요하는 일방주의도 걸림돌이다.
"정치적 차별성 없이 정당의 보스간 싸움으로 흘렀던 과거와는 달리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가 극명해진 점이 타협을 어렵게 한다"며 "'나는 선,너는 악'이라는 식의 자세도 문제"(숭실대 강원택 교수)라는 지적이다.
과거의 '패거리정치'가 '파당정치'로 외양만 바뀌었다는 비판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이렇다보니 가끔 있는 여야의 접촉은 대화가 아닌 형식적인 만남에 그칠 수밖에 없다.
상호 입장차만 확인한 채 얼굴을 붉히며 헤어지기 일쑤다.
이런 기조라면 국가보안법 등 개혁입법문제를 놓고 강행처리와 실력저지라는 극단적인 대결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강원택 교수는 "총 칼 대신 말로 싸우자는 게 정치인데 요즘은 말이 총 칼로 바뀌는 상황으로,동업자라는 최소한의 인식도 공유하지 못한 게 정치권의 현실"이라며 "여야는 제로섬이 아니라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정치력을 발휘해 막후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