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사상은 '실사구시 경세치용 이용후생'으로 압축된다. 명분보다 실리,경제 및 양생을 중시했던 실학자들은 많은 실용서를 펴냈다. 박지원의 '과농소초'(농업기술),정약용의 '마과회통'(홍역관련서),정약전의 '자산어보'(어류박물지),유득공의 '연경'(담배 이야기),이서구의 '녹앵무경'(앵무새 사육) 등이 그것이다. 당시의 생활백과 사전격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가 한글로 번역돼 나온다는 소식이다. 서유구(1764∼1845)는 북학파의 시조로 천문 농학 등을 다룬 '보만재 총서'를 펴낸 조부 명응,'해동농서'의 저자인 부친 호수를 이은 대학자로 일찍이 문과에 급제,군수 관찰사 등 외직,이조판서 대제학 등 내직을 고루 거쳤다. 순창군수 시절 농서를 구하는 정조에게 도 단위로 농학자를 둬 지방별 농업기술을 조사한 다음 전국적 농서를 편찬하자는 방안을 제시하고,이후에도 수차례 영농법 개혁을 역설한 상소문을 올렸는가 하면 농지경영을 다룬 '행포지',구황용 식량인 고구마 보급을 위한 '종저보' 등 농업관련서를 써서 보급했다. '임원경제지'는 이같은 기초 위에 농사직설 동의보감 산림경제 택리지 등 8백여종의 국내외 문헌을 참고해 엮은 백과전서.농사 일반(본리지),식용약용 식물(관휴지),직조염색(전공지),양생법(보양지),지리(상택지),치산(예규지) 등 16부로 이뤄져 '임원십육지' '임원경제십육지'라고도 일컫는다. 한국 농업사와 과학기술사는 물론 조선후기 경제 사정과 정책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자료다. 수많은 문헌을 소화해 쉽게 풀어쓴 데다 출처와 인용서를 명시,원전이 사라진 저서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1백13권 52책에 이르는 방대한 양과 다양한 내용으로 국역이 이뤄지지 못했는데 송오현 최선외국어학원장이 3억원을 내놓고,정명현씨(서울대 박사과정)등 각 분야 소장학자 19명이 번역하고,지식산업사(대표 김경희)에서 출간을 맡음으로써 한글본이 출간되게 됐다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기에 주요서적 대부분이 번역된 일본과 달리 우리는 아직도 국역사업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못한 일을 해낸 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