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행어사'는 한국 만화원작을 한국과 일본의 스태프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시무라 조지 감독이 연출을 맡고 일본인들이 제작을 주도한 탓에 한국보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색채가 강하다.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한국 애니메이션보다 재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것은 강력한 드라마와 풍부한 볼거리 때문일 것이다.


현대적인 캐릭터,인생의 아이러니와 딜레마가 녹아 있는 드라마 구조,속도감 있는 전개,다채로운 공간과 액션 등이 돋보인다.


느린 전개와 전형적인 인물,허약한 드라마 등으로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했던 한국 애니메이션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들이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를 비롯 (이)몽룡 (성)춘향 등에서 캐릭터를 빌려오지만 고전과는 상관없이 중국 무협극과 할리우드의 서부극 등을 혼용한 듯한 느낌을 준다.


시·공간적 배경도 조선시대가 아니라 유럽과 사막,중국과 일본 등을 넘나드는 무국적 판타지 공간이다.


주인공 문수는 품행이 방정한 조선의 어사가 아니다.


창에 찔린 몽룡을 방패삼아 악당들로부터 벗어나는 냉혹한 현실주의자이다.


그의 탐관오리 퇴치법은 형사 '더티 해리'처럼 대단히 폭력적이다.


춘향도 일개 기생에 머물지 않고 신출귀몰한 칼솜씨를 지닌 협객으로 등장한다.


춘향을 학대한 변 사또는 유럽 중세시대의 영주로 바뀌었다.


문수와 영주의 대결은 '반지의 제왕' 식의 판타지 액션으로 표현된다.


두 얼굴의 악당 유의태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 명의이지만 사실 그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


이는 겉모습과 다른 내면을 보도록 관객들에게 촉구한다.


문수가 정의를 세우고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는 낭만성을 철저히 배격함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춘향이 몽룡을 잃은 뒤 문수를 따라나서는 장면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아이러니' 구조다.


또 진실을 밝히기 위해 누나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눠야 하는 소년의 행동에는 삶의 딜레마가 집약돼 있다.


아이러니와 딜레마 구조는 좋은 영화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들이지만 그동안 국산 애니메이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약점도 있다.


문수가 겪는 두 가지 주요 사건간에는 연관성이 부족하고 칼로 목을 치는 잔혹함과 남성우월주의가 곳곳에 배어 있다.


26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