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는 추락 이날 오전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1백3엔대까지 추락한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원40전 떨어진 1천78원에 개장됐다. 이때부터 '혹시나' 하던 달러 대기매물이 매물이 쏟아지며 오전 중 1천68원대까지 하락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필요하면 행동하겠다"고 말했지만 외환시장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전에 이미 10원이 넘는 낙폭을 기록한 터라 오후 들어 외환딜러들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며칠간 급락장에서 환율은 폐장 직전 쏟아지는 매물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 끝까지 긴장을 풀수 없었지만 오늘 장초반에 이미 대세가 결정돼 갑작스런 시장개입만 나오지 않는 한 별다른 변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후 들어 역외매수세가 유입되며 한때 1천70원선을 회복한 환율은 장 막판 또다시 손절매성 매도가 이어지며 폐장 직전 1천63원80전까지 내려왔다. 이날 종가는 1천65원40전.하루 낙폭은 16원. ◆매도자밖에 없는 시장 구길모 외환은행 과장은 "주초만 해도 특정 대기업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얘기할 수 있었지만 어제부터는 누구라고 얘기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누가 주로 달러를 팔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딜러들의 공통된 대답이었다. 지난주만 해도 환율급락을 주도해 온 게 특정 조선업체이며 전자업체 물량도 간간이 나왔다는 얘기가 외환시장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그 물량이 대부분 소화된 17일부터는 달러 약세가 대세로 굳어지자 너나 없이 달러를 내다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당국의 개입을 기대하며 저가에 매수했다 급히 내놓는 손절매 물량과 필요에 의해 달러를 살수밖에 없는 수입업체들의 매수가 거래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매물은 대부분 소화된 것으로 안다. 지금도 나오고 있는 매물은 시장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까지 갈까 시장 관계자들은 이제 전망치를 내놓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최근 며칠새 지지선이라 불렀던 1천1백30원,1천1백원,1천80원이 차례로 맥없이 무너진 시장에서 향후 환율을 전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심 1천50원대를 지지선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한은 관계자는 "시장이 1천50원대를 예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굴곡이 심한 시장에서는 항상 그 이하로 떨어졌다 반등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주호 HSBC 이사도 "1천50원대에서 한번 저항을 받겠지만 예상하기 힘든 장"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마저 엔·달러 환율의 상승이나 정부개입 등의 변수가 없으면 힘들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단기 낙폭이 큰 만큼 본격 시장개입도 가까워진 것 아니냐며 조만간 급등을 예고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