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단독 표결처리를 강행,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킨 것은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재계가 그토록 반대해 왔고 결국에는 당초 입장에서 대폭 후퇴한 절충안을 내놓았음에도 끝내 외면한 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만것은 그동안 정부 여당이 강조해온 경제살리기 구호가 공염불이었음을 입증해주는 것과 다름없다. 우선 경제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법안을 여당이 '개혁'이라는 정치논리를 앞세워 합리적인 검토나 의견수렴 없이 일방 처리한 것부터가 적지 않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더구나 이 법안의 핵심내용인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이 시장경제 원리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불합리하고,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적 규제라는 점에서 걱정되는 부작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번 개정안이 본회의에서도 그대로 통과된다면 가뜩이나 얼어붙은 기업들의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어 경제난국 극복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게 분명하다. 경제 4단체가 "공정법 개정이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개혁인지 의문"이라며 "진정한 시장개혁은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 투자가 확대되고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공동성명에도 이같은 우려가 짙게 배어 있다. 더구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축소는 한마디로 정부가 앞장서 국내 우량기업의 무장을 해제시킴으로써 외국자본의 적대적 M&A(인수합병) 위협을 불러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투자가 위축되고 우량 대기업이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무방비로 내몰려 있는 마당에 정부와 여당은 오히려 기업의 손발을 묶는 입법을 강행해서 어쩌자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국내 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연기금을 동원할 수 있다고 정부 고위당국자가 언급했지만,정부가 정말 그런 의지를 갖고 있다면 기업의 경영권 방어능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의결권 제한부터 푸는 것이 순리다. 거듭 강조하지만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는 출자규제나 우량기업의 경영권을 흔드는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은 무조건 폐지되어야 한다. 공정위의 계좌추적권 연장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국회 본회의 심의에서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기업활력을 북돋워 고용을 늘리고 경제를 되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