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의욕을 꺾는 것이 개혁이라면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귀닫은 여당의 독단에 나라 경제의 운명을 맡겨야 하니 기가 막힐 뿐…."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열린우리당의 단독 표결로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자 재계는 허탈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법안이 통과되던 지난 18일 저녁 한나라당 의원들이 퇴장한 정무위 회의장에서는 기업의 논리는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기업인들과 경제단체 관계자들이 작년말부터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을 수없이 찾아가 되풀이한 하소연은 공허한 메아리가 돼버렸을 뿐이다. "기업이 진정한 애국자라던 대통령의 칭찬은 빈말이었나 봅니다. 정부와 정치권에 더이상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지난 1년간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재계 의견을 조금이라도 반영시켜 보겠다고 동분서주해온 재계 한 관계자는 "토씨 하나 고쳐줄 수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던 한 여당 의원을 잊을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강신호 회장과 현명관 부회장도 열린우리당 '386 의원'들이 중심이 된 주요 계파모임과 잇따라 만나 기업의 현실을 설명했지만 오히려 "기업이 이익을 내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면박만 들었을 뿐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직된 자세에 재계가 고민 끝에 지난 11일 내놓은 최종 양보안도 철저히 배제됐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5대 그룹에만 적용하고 나머지 12개 그룹은 풀어주자는 주장도 일부 찬성 의견이 있었으나 무시됐다. 금융사 의결권 축소폭을 단계적으로 20%로까지만 낮추자는 제안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투자보다 경영권 방어에 골몰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투자에 나서겠느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의 '개혁 최우선 행보'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는 점. 재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함께 3대 현안으로 꼽아온 기업도시와 비정규직 문제로까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8일 기업도시 관련 의원입법안이 시민단체들의 '재벌특혜법' 주장에 밀려 정작 기업도시 건설의 주체인 기업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기대 이하'가 됐다며 '마지막 건의문'을 정부와 여당에 냈다. 비정규직 입법도 마찬가지다. 재계는 국무회의를 통과한 입법안이 기업에 과중한 인건비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노동계가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국회 처리 과정에서 다시 한번 방향이 틀어질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