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차관을 모두 갚았던 날은….지금은 고인이 된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환한 미소를 띠며 IMF 졸업 서류에 또박또박 이름 석자를 썼다. 이때 쓰인 만년필은 국산 '아피스'(꿀벌이란 의미)였다. 이 만년필은 지금은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다. 구제금융을 신청한지 7주년을 맞은 지금 IMF 관리체제는 과연 박물관에 들어간 것인가.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는 얘기처럼 외환위기도 만년필 뚜껑을 닫아 박물관에 보관한 것으로 끝난 것인가. 7년 전 모질게도 추웠던 겨울에 닥친 외환위기는 달러가 바닥나 생긴 위기였다. 지금 외환보유액이 무려 1천8백60억달러로 불어났으니 달러가 부족해 생긴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확실하다. 아니 요즘엔 달러보유가 너무 많아 고민스런 판이다. 나라 곳간에 달러가 바닥나기까지 수십년간 쌓인 적폐와 잘못된 관행을 고치자는 것이 4대 부문(금융·기업·노사·공공) 구조조정이었다. 소위 '개혁'이었다. 압축성장과 더불어 축적돼 왔던 위기를 압축개혁으로 풀자는 것이었고 정부 당국자들은 "정부 수립후 40여년 동안 손대지 못한 개혁을 불과 2년여만에 해치웠다"고 자랑했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개혁이 논의되고 있다.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개혁의 기치를 드높이 내걸고 있다. 과연 '7년 전의 개혁'과 '지금의 개혁'이 같은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혹시 동음이의어는 아니며 동음이의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반대되는 글자는 아닌지. 돌아보면 이 7년동안 한국은 핵심 금융산업을 송두리째 외국자본에 넘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나라가 됐다.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과도한 기업투자는 지금은 과소투자를 걱정할 정도가 됐고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30% 금리는 5%로 내려앉았고 나홀로 금리를 더 내려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기업을 평가하는 잣대는 성장성,혁신,기업가정신 같은 것이 아니라 부채비율,배당률 같은 숫자로 갈아끼워졌고 기업의 최장기 투자자라 할 대주주가 외국인이나 소액주주와 동격이 됐다. 상장주식의 40% 이상을 외국인에게 넘기고 나니 이젠 너나없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찰을 쌓아두고 있다. 노사관계가 개선된 것 같지도 않다. 한술 더 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공무원 노조문제를 둘러싸고 주말에도 서울시내는 온통 어지러웠다. 출자총액제한제 등 각종 기업규제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교과서부터 반(反)기업 정서를 가르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난다고 사회분위기가 기업가를 우대할 것 같지도 않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IMF개혁이 부족해서일까. 외환위기 때나 지금이나 정치·경제·사회의 화두는 여전히 '개혁'이다. 그런데 경제·민생을 위한다는 개혁정책,개혁입법들이 등장할 때마다 거꾸로 서민들만 죽을 맛이니 어딘가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게 분명하다. 우등생도,부자도,기업가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어설픈 결과의 평등주의와 문제가 생기면 모두 '네 탓'으로 치부해버리는 핑계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시장주의 개혁이 싫어 평등주의 개혁을 꺼내든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IMF의 반동이며 어두운 그림자일 뿐이다.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죽이는 것이라면 그것에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 7년동안 개혁을 부르짖어왔지만 두 개혁의 거리는 너무도 멀다. 하나의 과잉은 또다른 과잉을 부르는 것인가. 오형규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