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무성했던 화섬업계의 인력·설비 구조조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중견 화섬업체 휴비스가 수원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대규모 인원정리에 나선 것. 휴비스는 지난 2000년 삼양사SK케미칼이 섬유사업부문을 각각 분리,통합해 설립한 폴리에스터 전문 생산업체로 '화섬업계 구조조정의 바람직한 모델'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점에서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돌릴수록 적자 21일 화섬업계에 따르면 휴비스는 지난 17일 폴리에스터 원사(장섬유)를 생산하는 수원공장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18일부터 공장 청소에 들어갔다. 원자재인 TPA(테레프탈산),EG(에틸렌그리콜)의 가격 폭등으로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폭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더이상 설비를 가동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회사는 대신 전주공장,중국 사천공장 등에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원면(단섬유)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휴비스는 22일부터 수원공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명예퇴직 규모는 전주공장과 울산공장을 포함해 전체 직원의 30% 수준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어려운 회사 사정과 상대적으로 높은 근로자들의 연령 등을 감안해 대부분 명예퇴직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만 퇴직금의 규모(2년치 혹은 3년치)를 놓고 회사측과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가 상여금,초과근무수당을 모두 반납할테니 공장만은 세우지 말아달라고 요청해와 깊이있는 논의를 거쳤지만 경영진에서 아무래도 더이상 공장을 돌리는 건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양적 구조조정 효과 없다 휴비스 경영진이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극한 처방을 내린 건 지난 2년새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해왔기 때문.TPA의 가격은 지난 2002년 t당 5백달러 초반대에서 현재는 9백달러대에 육박하고 있으며 EG는 2년새 t당 4백달러대에서 1천2백달러대로 2백%나 폭등했다. 그러나 폴리에스터는 오래전부터 공급과잉 상태인데다 수요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해 원자재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폴리에스터만을 생산하는 휴비스의 취약한 사업구조도 구조조정을 앞당겼다. 지난 2000년 삼양사와 SK케미칼 두 모기업이 빚까지 떠안아주며 회사를 출범시켰지만 제품 다각화 등 질적인 구조조정을 게을리하다 결국 조업중단 사태까지 불렀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폴리에스터 나일론만을 생산하는 중견 규모의 화섬업체들은 대한화섬,금강화섬,휴비스의 뒤를 이어 잇따라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SK그룹 태생지 사라지나 휴비스가 가동을 중단한 수원공장은 SK그룹의 태생지인 선경직물 공장이 위치했던 곳이다. 해방 후 일본회사였던 선경직물의 회장이 된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이 1966년 선경화섬을 세우면서 68년과 69년 아세테이트,폴리에스터 공장을 설립했다. 현재는 SK케미칼이 아세테이트를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 2000년 SK케미칼과 삼양사의 섬유사업부문을 통합해 설립한 휴비스가 폴리에스터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번 가동중단으로 수원공장 부지에 대한 매각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수원공장 부지 주변은 이미 아파트촌이 형성돼 있는 노른자위 땅으로 SK케미칼은 이 땅의 매각을 통해 4천억원 정도의 현금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SK케미칼은 이를 위해 아세테이트 생산 설비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