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 '과거 분식회계 사면' 왜 추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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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위원회가 증권분야 집단소송제법 시행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법 개정 작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여러 가지로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환율 급락으로 기업경영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집단소송이 남발될 경우 실물경제가 크게 위협받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금감위는 집단소송제법 개정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열린우리당과 직접 협의,의원입법 형식으로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여권내 개혁파와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내년 집단소송 봇물 우려
내년 1월부터 증권분야 집단소송제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기업들 중 분식회계를 올해까지 수정하지 못한 기업들이 무더기로 소송 회오리에 말려들 것이라는 게 금융감독당국의 우려다.
금감위 관계자는 "과거 분식을 내년 회계결산에서 고칠 경우 집단소송 대상이 되는지 여부에 대한 법률 유권해석이 아직 없는 상태"라며 "내년 3월 이후 대규모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12월 말 결산법인은 내년 3월 회계결산에서 분식회계를 바로잡을 경우 집단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분식책임 경감도 검토
금감위는 분식회계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전기(前期)오류수정'을 하도록 규정하고,분식회계 내용이 중대할 경우 전년도 재무제표를 수정 작성해 첨부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분식회계를 풀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이 불법·편법을 동원해 분식을 털어내는 역(逆)분식을 시도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최근 하이닉스가 약 2조원의 분식회계를 털어낸 방법은 회계기준을 위반한 또 다른 분식"이라며 "이 같은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분식회계를 털어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방안조차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사면'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실성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분식회계는 상법과 형법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민·형사상 처벌뿐만 아니라 일반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은 현행법상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다만 기업들이 분식회계를 정확히 수정할 경우 금감위가 회계감리를 면제해주거나 완화함으로써 사실상 처벌하지 않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과의 조율이 관건
금감위는 법무부 재정경제부 등과 협의를 거쳐 연말까지 법을 개정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판단,열린우리당과 협의를 통해내년 2월 임시국회 때까지 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부 여당의원들은 법 개정 취지에 동조하고 있지만,'개혁후퇴'를 우려하며 반대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아 최종 조율과정이 중요 관건으로 떠올랐다.
재정경제부는 법 개정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내년 종합투자계획(한국판 뉴딜)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집단소송제법 개정안까지 들고나와 전선을 확대시키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