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블랙박스, 그 비밀을 풀어라' 인체의 마지막 신비로 불리우는 뇌를 연구하는 '뇌과학'이 국내에서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늦은감이 없진 않지만 생물학 공학 의학 등 분야별 혹은 각 영역을 결합한 융합연구가 국내에서도 활발해지고 있다. 인간의 뇌가 가진 과학적 매력에다가 뇌 연구를 통한 생명공학.의학의 발달과 무궁무진한 산업적 응용성이 과학.공학자들을 뇌 연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고 있는 이유다. 특히 최근 들어 정부가 뇌과학 분야 지원을 확대하고 민간 병원이나 대학들도 잇따라 뇌과학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뇌과학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뇌과학연구소 늘어난다=우리나라의 뇌과학은 아직 기초 수준이다. 그 동안 뇌과학 연구는 국가연구개발 사업이나 일부 대학과 연구기관의 연구실을 통해 이뤄져 왔다. 전자공학 생명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이 프로젝트 단위로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에도 뇌과학연구소들이 속속 들어서며 점차 전문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인제대는 23일 대덕연구단지 내 한화중앙연구소 안에 '뇌과학기술연구소'를 개소했다. 인제대는 한화중앙연구소 중추신경계 연구팀원들을 영입,교수로 채용하고 동물 행동실험시설 등 연구장비와 연구실도 모두 임대했다. 인제대측은 "이 연구소를 통해 알츠하이머병,다운증후군 등 각종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내년에는 대학원에 뇌과학 석·박사 과정을 신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가천의대는 지난 9월 뇌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장희 교수를 영입,국내 최대 규모의 뇌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는 PET(양전자단층촬영기)와 MRI(자기공명영상장치)를 결합한 차세대 뇌영상시스템을 개발,각종 뇌질환 진단과 연구에 활용할 계획이다. ◆인공 두뇌 나온다=지난 97년 뇌연구개발 기본계획에 따라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뇌과학연구센터는 올해부터 시작된 3차 사업을 통해 인공두뇌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전자 전기 컴퓨터 분야의 전문가들이 생명공학 심리학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뇌의 시각,청각,인지 등의 기능을 연구해 공학적으로 뇌를 구현해내는 것이다. 시각 분야에서는 양현승 KAIST 전산학과 교수 등이 뇌신경세포 기능 중 60∼70%를 차지하는 시각 기능을 공학적으로 구현,컴퓨터 칩 등으로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밝기나 색깔 등 초기 시각 인식과정의 알고리즘은 물론 움직임이나 공간 시각,선택적 시각 등 베일에 가려져 있는 뇌의 시각 인식 알고리즘을 푸는 게 주요 임무다. 양 교수는 "뇌의 시각인지 기능 중 일부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리를 밝혀내기도 했다"며 "연구과정에서 나온 결과물들은 로봇이나 보안장치 등 산업적으로도 응용도가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청각 분야에선 최승진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등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사람의 뇌가 어떻게 수많은 소리 가운데 자신이 듣기 원하는 소리를 가려서 들을 수 있는지 그 원리를 밝혀내 프로그램화하는 게 주요 목적이다. 최 교수는 음원을 분리해내 소리를 인식하는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생명과학으로 뇌의 신비 푼다=최근 뇌질환 치료 등의 연구를 주도적으로 전담할 21세기프런티어 '뇌기능연구사업단'이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뇌기능연구사업단은 10년간 총 사업비 1천3백50억원을 지원받아 뇌과학 관련 핵심 원천기술을 연구하게 된다. 올해의 경우 뇌연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설비 마련과 뇌기능 유전체 연구,뇌기능 항진 및 뇌질환 핵심기전 연구 등에 주력하고 있다. 뇌기능연구사업단 연구진들은 유전자 및 세포 작용 메커니즘 연구 등을 통해 각종 질병 치료법과 뇌의 작용원리를 밝혀낼 계획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 박사가 이끄는 '학습현상기억연구단'은 뇌의 유전학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신 박사팀은 그 동안 학습 및 기억력 유전자,공포 유전자,통증억제 유전자 등을 발견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뇌기능연구사업단 관계자는 "최근 들어 생명과학적 측면에서 뇌의 기능을 밝혀내는 연구가 크게 활발해지는 추세"라며 "생명과학 전자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결합은 필수"라고 설명했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