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IT 한국, 자만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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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은 과연 우리가 IT강국인가에 의문을 표시한 적이 있었다.
인터넷 인구비중 등 우리가 자랑하는 몇가지 IT지표에 가려진 이면들을 들춰내며 오히려 IT소비 강국이라 해야 정확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스스로 깎아내릴 필요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이 급변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IT 정부지도자 포럼은 그 점을 확인시켜줬다.
일본은 'e-Japan'계획으로 세계 최고의 IT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고 나섰고,그 목표연도는 바로 내년이다.
내친 김에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으로 '아시아 IT 이니셔티브'를 진행시키고 있다.
미국 유럽과 함께 세계 3각축의 지위를 노리는 중국.그 야심은 더 이상 중국을 기술추격국이라는 선형적 관점에서 바라볼 게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문득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한·중·일 IT동맹이 떠오른다.
필시 세 나라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동상삼몽(同床三夢)이 아닐지.
중국과 일본만이 아니다.
IT의 전략적 활용에 일찍 눈을 뜬 싱가포르는 다음 목표를 향해 바쁘게 나아가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그런 싱가포르에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를 이미 이전했거나 신설 중이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IT분업과 아웃소싱의 수혜자 인도는 그 전략적 위치를 십분 활용,스스로의 목소리를 준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발길이 점점 빨라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다국적 기업 CEO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우리를 세계적인 IT 테스트베드(test-bed·실험장)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정부 당국자들은 고무된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과연 5년 뒤에도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번 포럼에서 가진 첫 번째 의문이다.
경제개발 측면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지배구조''교육기술' 등 포럼의 다른 주제들에서도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되뇌게 만들었다.
정부혁신을 외치면서 정부는 갈수록 몸집을 불려만 가고 있다.
혁신적인 정부라면 정부-민간 파트너십을 강조해야 마땅한데도 모든 것을 다하려는 듯하다.
그런 과정에서 규제가 양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융합이다''컨버전스다'시장은 빠르게 변해가는데 법과 제도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그것도 이해당사자들이 극렬히 반대하고 나서면 시간만 보내기 일쑤다.
그 뿐인가.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정서는 다국적 기업들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말로는 '글로벌이다''IT 다국적 기업들의 연구개발센터를 유치하고 싶다'하면서도 강자(强者)에 대한 거부반응은 그 어느 곳보다 강하다.
어떻게 하면 다국적 기업을 전략적으로 활용('이용'이 더 맞을지도)할지를 고민하는 경쟁국들과는 딴판인 셈이다.
교육기술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의 한 학교(Crescent Girls'School)는 미래의 학교 모습을 생각케 했다.
앞으로 IT강국은 교육에서 결정날 것이 분명하다.
IT와 교육기술이 기술적 측면을 넘어 제도를 바꾸고 교사혁명,교육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우리는 어떤가.
남들은 미래를 대비한 교육기술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시험을 대비한 교육기술을 말하고 있다.
수능시험 부정에 IT기술이 동원될 정도면 더 말해 뭣하겠는가.
아시아·태평양지역 IT 정부지도자 포럼을 주최한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사실을 제대로 알자(get the fact)'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IT강국을 자처하는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