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통합거래소 이사장 공모절차를 최종 낙점 단계에서 중단시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청와대에 추천된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강영주 증권거래소 이사장 등 3명의 후보들은 민간 추천위원들을 통해 걸러지는 모양새를 갖추긴 했으나,모두 재정경제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말이 많았던 터이다. 청와대가 금융권 요직의 '모피아(재경부 관료 출신) 독식'에 제동을 거는 한편,재경부 수장인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금융권 인사 개입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게다가 연말연초 개각설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부총리에게까지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일부 시각도 있다. ◆숨죽인 재경부 지난 24일 통합거래소 이사장 후보 3인을 추천받은 청와대측은 추천 결과를 보고 곤혹스러움과 함께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는 완곡하게나마 한이헌 전 경제수석을 선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려보냈지만 재경부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추천위원들에 의해 정면 거부됐다는 점과 함께,3배수의 후보가 모두 재경부 출신들로 채워졌다는 점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가와 금융권에서는 올해 말로 임기가 끝나는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 사장 자리는 재경부 출신들이 맡고 차관급인 통합거래소 이사장 자리는 정치권 몫으로 한다는 데 청와대와 재경부 간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져 왔다. 그러나 추천된 통합거래소 이사장 후보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25일 오전까지만 해도 청와대의 대세는 "황당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재경부가 적극 후원한 것으로 알려진 정건용 전 총재보다 강영주 이사장이 최종 낙점 후보로 더 유력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상황이 급반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와의 암묵적 합의를 "추천위원들이 한 일"이라는 이유로 재경부가 사실상 파기한 데 대한 '분노'가 확산됐다는 것. 더욱이 세명의 후보가 각기 검증과정에서 한두 가지씩 이력상의 '문제'를 드러내면서 '후보선임 백지화'를 밀어붙일 명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내년 초 새 임기가 시작되는 자산관리공사 사장 후보에 재경부 출신인 김우식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위원장을 사실상 단독 후보로 추천한 것과 재경부가 김규복 전 재경부 기획관리실장을 예금보험공사 사장으로 밀고 있다는 소문도 청와대를 자극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스로 파기한 인사시스템 청와대도 이번 통합거래소 인사절차를 백지화함으로써 적지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 노무현 정부 들어 새롭게 만들어 놓은 공모를 통한 공기업 사장 인선 시스템을 청와대가 중요한 치적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관가 일각에서는 재경부의 금융기관장 독식도 문제지만 청와대가 선호하는 후보가 3배수 추천에도 들지 못한 데 대한 '청와대의 분노'를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공무원을 기관장 후보로 추천할 때는 항상 장관의 재가를 받는 게 관행이라는 점에서 이헌재 부총리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을 소지가 있어 그 부분에 대해 청와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관심이 되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