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공개석상에선 입만 열면 "경제를 챙겨야 한다"고 외친다. 17대 국회에서도 정치권의 화두는 '경제 살리기'였다. 지난달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모든 정책과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 가동된 여야간 원탁회의 명칭 앞에 '민생경제'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경제'란 단어에 대한 정치권의 선호도는 높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우선론'은 정작 현실정치에선 '구두선'에 그치기 일쑤다. 정부가 경제정책을 집행하는데 기준이 되는 예산안 심의 과정을 보면 정치인들의 '언행불일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회는 헌법 규정상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내달 2일까지 마쳐야 하지만 이를 어길 가능성이 높다. 열린우리당은 기한 내에 통과시키려고 하지만,한나라당은 '투쟁수단'인 예산 심의를 늦추고 있어서다. 정무위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여당의 공정거래법 단독 처리에 대한 항의로 지난주 심의에 불참했다. 운영위도 최광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에 대한 면직동의안 표결처리 과정에서 쌓인 여야간 앙금으로 예산안 심사는 뒤로 밀렸다. 당리당략이 예산안 심의에 우선했던 셈이다. 상임위 예비심사가 마무리되더라도 '고개'를 하나 넘었을 뿐이다. 예산결산특위에서 예산안이 의결되기까지는 '첩첩산중'이다. 더구나 여야는 예결특위 산하 예산결산 소위원회의 위원장 자리 다툼을 벌이느라 소위조차 아직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28일 "예결특위에서 예산안 심사를 끝내는데 10일가량 걸린다. 내달 9일 정기국회 내 처리도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시한에 쫓길 경우 예산안 심의는 졸속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지난 16대 국회에서 법정기일 내 예산안이 처리된 경우는 4년 중 단 한차례에 그쳤다. 의원의 63%가 물갈이된 17대 국회도 기대와는 달리 '구습'과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 홍영식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