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현 <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 최근 환율이 급락함에 따라 재경부가 한국은행에 환율방어를 위한 발권요청을 해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재경부는 환율방어를 위한 외평기금 잔액이 소진되자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달러를 매입해 환율하락을 막겠다는 의도다. 만일 현재의 환율하락이 일시적 충격에 의한 것이라면 안정적인 거시경제 운용을 위해 적절한 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재의 환율하락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의도적인 '달러화 약세정책'(Weak Dollar Policy)에 따른 것이고 이러한 달러화 약세는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현상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달러화 약세는 미국의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 즉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으로 이미 2002년부터 그 조짐을 드러냈다. 부시의 재선 이후 달러화 약세정책은 본격적으로 수행됐고 "환율은 시장 상황을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는 미 재무장관의 발언 등으로 비추어볼 때 미국의 정책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재정적자 해소를 위한 달러화 약세정책은 이미 여러 차례 수행된 경험이 있다. 지난 1차 오일쇼크 시기에 시작된 달러화의 금태환(金兌換) 금지는 소위 '닉슨 쇼크'라 불리며 달러 약세를 유지시켰다. 1985년 당시 레이건 정부는 국방비 지출증가에 따른 막대한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선진 5개국간의 '플라자 협정'을 맺어 달러화 약세 및 엔화 강세를 정책적으로 추진했다. 미국의 환율정책은 일단 정책기조가 설정되면 매우 장기적으로 운영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실제로 닉슨 쇼크는 약 7년간,플라자협정은 거의 10년여간 지속됐다. 과거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현재 부시정부의 달러약세화 기조도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무역수지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가장 큰 적자폭을 보이고 있다. 만일 중국이 변동환율제로 변환해 위안화 절상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면 미국의 무역적자 폭도 줄어들어 환율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장도 자연스럽게 흡수될 것이다.그러나 위안화 절상이 급속히 이뤄질 경우 빠른 속도로 성장중이던 중국경제가 급격히 냉각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변동환율제를 택하는 것은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달러 약세 현상은 정부개입을 통해 피해갈 수 있는 일시적 국면이 아니라 우리경제가 중장기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재경부의 발권력 동원을 통한 달러매입은 외환시장에 대한 일시적 개입일 뿐 달러약세라는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적다. 더욱이 발권력까지 동원해 달러매입을 할 경우 시중통화량의 증가는 피할 수 없고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선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이미 기존의 통화안정증권도 1백조원 이상 발행된 상태이다.이에 따른 이자 부담만도 올해 5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현재의 환율하락은 수출기업들과 국민경제 전반에 악재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그러나 피할수 없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일어날 현상이라면 미봉책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대책에 나서는 것이 옳다. 기업은 현재와 같이 정부의 환율정책에 의존할 게 아니라 시장상황의 변화에 대한 자생적 대응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현재의 환율이 고통스런 수준이긴 하지만 외환위기 이전에는 달러당 8백∼9백원대 환율을 경험한 바 있다. 일본의 경우,달러당 2백50엔에서 90엔으로 환율이 하락했을 때 오히려 기업의 적극적인 경영합리화를 통해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산업전반의 경영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수출에 불리한 달러화를 사용하는 대신 엔화 유로화 등으로 결제수단을 다변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대처방법은 선물환 등의 파생상품을 이용한 리스크관리를 통해 헤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환율 급변동에 대해 국내기업 대부분이 리스크 관리에 매우 취약한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리스크 관리 없는 안정적 경영은 불가능하다. 이번의 환율하락 사태가 리스크 관리를 통한 경영 효율성을 증대시켜 국내 기업의 자생력을 높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