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설립 35년만에 처음으로 정년퇴직자를 배출해 화제다.
주인공은 유정호 산업·기업경제부 선임연구위원(60).
KDI에는 지금까지 무려 1천여명의 연구위원이 거쳐갔지만 국내 최고 수준의 두뇌들을 탐낸 학계 정계 재계 등의 '유혹' 때문에 단 한사람도 정년을 채우지 못했는데 유 위원이 내달 정년을 채우고 영예롭게 물러나는 첫 사례가 된 것이다.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난 유 위원은 서울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1년 KDI에 들어온 이래 지금까지 단 한번의 '외도' 없이 KDI를 지켰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와 스탠퍼드대학원 초빙연구원,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자문관,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내기도 했으나 모두 KDI 연구위원 자격을 유지한 상태였다.
유 위원은 "그동안 대학에서 교수로 와 달라는 요청도 많았으나 처음 부탁받은 대학이 여자대학이어서 부인의 질투 섞인 반대로 거절한 것이 24년 외길을 걸어온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유 위원은 지난 98년부터 3년간 부원장을 맡기도 했고 작년까진 경제정보센터 소장으로 근무했으나 지금은 선임연구위원으로 후배들과 함께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주로 국제무역 통상정책 분야에서 연구활동을 했던 유 위원은 올해도 '관치청산,시장경제만이 살 길이다'이라는 책을 펴내 후배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유 위원은 "최근 새로 도입된 명예연구위원 제도 덕택에 1년간 KDI로 더 출근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며 "지난 96년 정년을 몇 달 남기고 작고하신 주학중 박사가 누구보다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는 "80년대 초나 지금이나 통상압력 문제는 여전하다"며 "중요한 것은 국내 정책과 통상정책이 따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위원은 초대 원장으로 12년간 원장직을 지냈던 김만제 전 의원을 시작으로 김중수 현 원장에 이르기까지 원장으로 모셨던 선·후배만도 11명에 이른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