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골프장 회원권의 기준시가가 넉 달 만에 10% 가까이 급락하고 서울 강남까지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하는 등 부동산 경기가 급랭,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일본형 장기불황'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거품의 정도와 경제의 기초 여건 등을 놓고 볼 때 한국 경제가 과거 90년대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나친 부동산 시장 규제책으로 인해 자산가격 하락에 가속도가 붙을 경우 경기 회복의 속도가 늦어지는 '중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은 크다는 지적이다. ◆우려되는 부동산발(發) 불황 최근 들어 일본형 장기불황에 대한 우려가 끊임 없이 제기되는 것은 한국의 부동산 버블 형성 과정이 장기불황 초기의 일본과 비슷한 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및 엔화표시 자산가치가 급등하면서 부동산 가격도 80년대 후반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6대 도시의 평균땅값은 1984∼91년 중에 3.3배 상승했다. 일본 은행들도 부동산 담보 가계대출에 대대적으로 나서면서 '땅값 상승→담보가치 상승→추가 대출→땅값 상승'의 과정을 거쳐 부동산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천만엔을 조금 웃돌던 도쿄 요미우리 골프장의 회원권 시세는 89년에는 1억3천만엔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일본 정책당국은 80년대 말 기준금리 인상,부동산업에 대한 대출규제 등을 통해 부동산 경기 연착륙을 시도하고 나섰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부동산 가격 급락→금융회사 부실→내수경기 위축→부동산 가격 급락'의 악순환에 빠지면서 장기 복합불황으로 진입했다. 도쿄 요미우리 골프장의 회원권 시세도 최고가를 기록했던 89년에 비해 6분의 1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중기불황 가능성 대비해야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저금리 정책과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 등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는 점에서 일본과 유사하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의 정도나 경제의 기초여건 면에서는 일본과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한국은 부동산 거품이 본격 형성된 지난 2002∼2003년간 전국 주택매매가격 종합지수가 23%,서울 강남지역 아파트는 55% 상승했다. 거품기간 동안 6대도시 평균 땅값이 3백% 넘게 상승한 일본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또 부동산담보 인정 비율이 일본은 1백% 이상인 데 반해 한국은 40∼50% 수준에 그쳐 부동산 가격 하락이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금리·재정 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여지와 은행시스템의 안정성면에서도 한국은 과거 일본보다는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 시장 긴축정책이 지속될 경우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꺼지면서 중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수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가격까지 급락할 경우 한국 경제는 '중기 불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낮추려고 할 경우 자산가격 하락에 가속도가 붙어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도 부동산 거품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이제는 부동산 정책을 중립적인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