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국내 은행들의 외국인 이사 선임을 일정부분 제한하겠다는 뜻을 재차 피력했다. 윤 위원장은 29일 발행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인 이사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국내 전문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며 "국내 은행의 외국인 이사에 대해 일정기간 국내 거주 요건을 부과하고 외국인 이사 수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도 국내 감독상의 특성이나 은행분야에서의 고려사항들은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발 가능성에 미리 쐐기를 박았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들의 외국인 이사 선임이 앞으로는 상당부분 제약될 전망이다. ◆외국인 이사 현황 '리처드 블럼 뉴브릿지캐피탈 공동회장,스티븐 롱 씨티그룹인터내셔널 최고경영책임자,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물로 통하는 이들 3인은 각각 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 외환은행의 등기임원을 겸하고 있다. 물론 상근(상임)이사는 아니다. 분기마다 1회 이상씩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해 주요 경영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고,경영진(집행임원)에 대한 감시와 통제 등 사외이사의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들 세 은행의 이사회 멤버 중 외국인 이사의 비중은 제일은행이 81%(16명 중 13명),외환은행이 66%(9명 중 6명),한국씨티은행이 61%(13명 중 8명) 등 모두 절반을 넘는다. 이들 외국인 이사는 대부분 사외이사다. ◆주주이익이 최대 관심사 외국인 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마치 '주주들의 모임'으로 착각할 정도다. 제일은행의 경우 리처드 블럼 뉴브릿지캐피탈 공동회장을 비롯 데이비드 보더만(뉴브릿지캐피탈 공동회장),웨이지안 샨,폴 첸(뉴브릿지캐피탈홍콩 임원),다니엘 캐롤(뉴브릿지캐피탈 집행임원) 등 5명이 뉴브릿지캐피탈 측 인사다. 론스타가 최대주주인 외환은행도 외국인 사외이사 4명 가운데 3명이 론스타의 현직 임원들이다. 지난 11월 출범한 한국씨티은행도 외국인 사외이사 5명 전원이 씨티그룹 최고위급 임원들로 짜여져 있다. 3명의 상근 외국인 이사 역시 씨티은행 출신들이다. 즉 3개 외국계 은행은 경영진과 이사회 멤버들이 모두 최대주주의 내부인사로 구성돼 있는 셈이다. 따라서 모든 경영판단이 '주주이익 극대화'란 잣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으며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국가경제 발전 등과 같은 '공공이익 개념'은 희박할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 당국의 입장 윤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금융당국이 칼을 빼들었음을 말해준다. 금감원 관계자는 "싱가포르처럼 은행의 내국인 이사 비중을 50% 이상 두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윤 위원장의 발언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재영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연구원은 "주주대표들이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감위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한 외국계 은행 사외이사는 "주주들이 원하는 사람을 사외이사로 뽑아 이들로 하여금 경영진을 견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 아니냐"면서 "외국계 은행에서 내국인이 더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국계 은행 관계자도 "정부에서 규정을 개정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겠지만 자칫 외국자본이 국내에 진출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