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결과를 놓고 우크라이나의 정국 혼란이 계속되는가운데 레오니드 쿠츠마 대통령이 29일 전격적으로 재선거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피력하고 총리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선자도 이에 동의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사태가해결국면에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가능케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10월31일 실시된 우크라이나 대선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 일지다. ▲ 2004년 10월 31일 = 공식 감시단들이 '심각한 부정행위'가 있었음을 지적한가운데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와 빅토르 유시첸코 후보가 접전을 벌임. 야당 지지자들은 100만명 이상의 유권자가 투표권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주장. ▲ 2004년 11월 10일 = 1차 투표 결과가 공식 발표됨. 유시첸코 후보가 39.87%를 득표했으며 야누코비치 총리는 39.32%를 얻었음. ▲ 2004년 11월 21일 = 결선투표 시작. ▲ 2004년 11월 22일 = 키예프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야당은 지지자들에게유시첸코 후보가 승리자로 선언될 때까지 단호한 태도를 유지할 것을 촉구함. - 유럽안보협력회의(OSCE)측 감시단은 '투표가 민주적이지 않았다'고 지적.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야누코비치 총리의 승리를 축하했으나 유럽외무장관들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경고함. ▲ 2004년 11월 23일 = 키예프 거리에 10만여명이 모여 항의시위를 벌임. 유시첸코를 대통령으로 인정한 르비프시(市)에서도 비슷한 인파가 모여 시위를 벌임. ▲ 2004년 11월 24일 = 10만명 이상의 시위대가 키예프 광장에서 다시 시위를벌임. 르비프시에서도 수만명이 거리로 몰려듬. -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야누코비치 총리를 승리자로 공식 발표. 유시첸코 후보는 총파업을 촉구했으며 야당은 도로와 공항, 철로를 봉쇄하겠다고 다짐. -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선거결과 인정을 거부했으며 우크라이나가 선거결과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양국 관계에 중대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 ▲ 2004년 11월 25일 = 특수부대가 대통령 관저를 둘러싼 가운데 오렌지색 옷을입은 야당 지지자들이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인간 장벽 구축. - 르비프시에서는 교사들이 파업을 시작했으며 대학생 수천명도 수업을 거부. - 대법원은 선거결과 공표를 금지했으며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이 중재를 위해 키예프에 도착. - 유럽연합(EU) 순번제 의장국인 네덜란드의 얀 페터 발케넨데 총리는 레오니드쿠츠마 대통령에게 선거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힘. ▲ 2004년 11월 26일 = 야누코비치 총리는 '유혈사태가 일어날 경우' 대통령직에 오르기를 바라지 않는다면서 지지자들에게 침착할 것을 호소. - 유럽과 러시아의 중재로 양측이 처음으로 사태 해결을 위한 회담을 열기로 한가운데 러시아는 유럽의 개입을 비난. ▲ 2004년 11월 27일 = 우크라이나 의회, 선거결과 무효 선언. - 야누코비치 총리 지지자 약 10만명이 동부 도네츠크에서 시위를 벌임. 도네스크시 당국은 유시첸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자치공화국 수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힘. - 러시아는 서방국가들이 소요사태를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 ▲ 2004년 11월 28일 = 친(親) 러시아 성향 지역들은 재선거가 실시되면 친(親)유럽성향의 동부와 분리를 추진하겠다고 위협. - 야당 지도자들은 쿠츠마 대통령에게 즉각 야누코비치 총리와 국가 분리를 주장한 지역의 주지사들을 해임할 것을 요구. 야당 지도자들은 또 12월 6일까지 재선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자신들이 개입할 것임을 경고. ▲ 2004년 11월 29일 = 양측 지지자 수천명이 대법원 바깥으로 몰려든 가운데대법원은 선거 부정행위 주장에 대해 조사를 벌임. - 야누코비치 총리는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등 두 지역에서 재선거를 치르는 것을 수용하겠다고 밝힘. - 친러시아성향의 도네츠크에서는 다음 주말 자치를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키로함. - 쿠츠마 대통령은 현 사태 해결을 위해 재선거를 치르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힘. (키예프 AFP=연합뉴스)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