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욱 < 중앙대 경영대 교수 > 텅스텐,생사,흑연,한천(寒天),철광석…. 1964년 11월30일,우리나라가 수출 1억달러 달성을 이룬 그 날 해외에 내다판 5대 수출품목이다. 당시 수출대상 국가 41개국,순위는 83위였다. 당시 수출품 중 전자제품은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고작이었다. 수출 1억달러 돌파를 기념하기 위해 이 날이 '무역의 날'로 지정됐다. 만 40년이 된 금년 무역의 날엔 2천억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올 수출이 지난해보다 30%가량 증가한 2천5백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올들어 수출이 크게 는 것은 세계경제의 회복에 따른 반도체와 휴대폰,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목이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휴대폰 수출 증가세가 눈에 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휴대폰은 단일품목으로 지난달 말 이미 수출 1백90억달러를 넘었으며 올해 사상 처음으로 2백억달러 돌파가 예상되고 있다. 휴대폰은 반도체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수출시장에서의 비중이 커졌다. 국내 휴대폰 생산업체들이 올해 전세계에 판 휴대폰은 총 1억5천여만대에 이른다. 이는 전세계인이 새로 구입하는 휴대폰 4대 중 1대를 한국산으로 선택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처음 한국 휴대폰이 세계시장에 진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선진 기술을 갖고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핀란드 노키아와 미국 모토로라라는 강력한 시장리더들은 국내 업체가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의 오디세우스가 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철수하는 위장 전술을 펼친 얘기다. 트로이는 그리스군이 철수한 것으로 오판하고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지만 숨어 있던 그리스군에 의해 함락돼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트로이 목마는 숨어 있던 외부의 적에 의해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선진기술 기업들은 세계 휴대폰 시장이라는 트로이성에서 그들의 위치를 고수하며 성공에 만족하고 있을 때 예상치도 못한 한국 휴대폰업체들이 뛰어들었다. 휴대폰이 단순히 전화 기능만을 가진 게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새로운 제품 개발과 신기술이라는 목마를 앞세우고서다. 이들은 현재 노키아 모토로라의 위치를 위협하며 세계적인 생산업체로 자리잡았다. 실제 삼성전자 애니콜은 대당 가격이 평균 1백78달러로 노키아 1백31달러,모토로라 1백68달러보다 월등히 높은 고급제품이 됐다. 올해 판매 목표인 8천6백만대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년 전체 생산량의 92%인 7천9백만대를 해외로 수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휴대폰업체들이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제품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수출을 늘리는 효과를 얻는데 그치지 않고 있다. 국산 자동차,전자제품 등이 세계시장에서 우수한 품질을 지닌 최고 제품이라는 인정을 받게 하는 시너지 효과를 안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휴대폰과 관련된 부품 및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도 끊임없는 성장과 함께 새로운 부품과 기술개발에 투자하면서 LCD,메모리,배터리,카메라모듈 같은 휴대폰 핵심부품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 98년 40%에 불과했던 휴대폰 부품 국산화율은 지난해 70%까지 높아졌고 삼성전자의 경우 85%로 상승했다. 트로이성은 함락됐다. 세계시장에서 철옹성같던 선진기업들도 한국기업이 가진 뛰어난 기술력과 기지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기업도 언젠가는 트로이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욕구는 항상 변하고 그에 따른 기업의 움직임은 점점 제품의 수명주기를 단축시켜 나가고 지속적인 수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다가오는 미래에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빨리 파악하고,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기업들은 한국의 휴대폰 사업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전략을 되새기며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