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星來 < 한국외국어대 교수ㆍ과학사 > 새 원소에 '일본'이란 이름이 남게 될 모양이다. 일본 이화학연구소 과학자들이 1백13번째 원소를 발견한 것으로 확인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29일자 한국경제신문에도 살짝 보도된 일이 있지만, 이 과학자들은 연구소의 가속기로 아연의 원자핵과 비스머스의 원자핵을 80일 동안 충돌시키는 실험 끝에 새 원소를 찾아낸 것이다. 새 원소가 발견되면 국제적 확인 절차를 마치고 공식 이름을 가지게 되는데, 이 원소에는 '재패늄(Japanium)'이란 이름이 붙여질 예정이다. 지금까지 나라이름이 원소 이름으로 붙여진 경우는 독일(Germanium=32번),프랑스(Francium=87),미국(Americium=95),폴란드(Pollonium=84)등이 있다. 이 소식을 읽으면서 나는 언젠가 한국의 원소 '코리아늄(Koreanium)'도 원소 주기율표에 오를 날이 있으려니 생각하게 된다. 지난 11월호 '리켄뉴스'(일본 이화학연구소 월간지)에는 이 원소의 연구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말이 원소이지, 사실은 이 새 원소란 겨우 0.0003초 만에 사라진 그야말로 '찰나' 동안 이 세상에 나타났다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찾으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었다. 연구소의 선형가속기 라일락(RILAC)에서 83번 원소 비스머스 표적에 30번 원소 아연의 원자핵을 빛의 속도 10%로 가속해 충돌시키기를 80일 동안….계산에 의하면 1초 동안 2조5천억개의 아연 원자핵이 비스머스 표적을 때렸고, 원자핵과 목표물의 충돌횟수는 모두 1천7백경(京)이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겨우 1개의 새 원소가 나타났는가 했더니,그 순간 사라졌다는 뜻이다. 수소를 1번, 헬륨을 2번으로 하는 원소는 그 주기율표가 고등학교 '화학' 교재의 표지 안장에 등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편이다. 그 내용을 외우고 다닐 사람이야 거의 없겠지만, 그 표에는 대략 1백3개 정도가 이름과 함께 도표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름은 1백4번 이후도 더 많이 알려져 있고, 이제 1백13번도 발견됐다는 말이다. 하기는 1백14번 원소가 먼저 발견됐다는 뉴스가 있기도 했고, 이번 1백13번도 러시아가 먼저 발견을 주장했지만, 증명이 안됐던 모양이다. 과학에서 역시 국가간 경쟁은 치열하다. 현재 러시아란 나라 이름의 원소는 없지만,전에 러시아 과학자들이 발견한 원소에는 그들의 두브나연구소 이름을 딴 '두브늄'(1백5번)이 있다. 하기는 지명을 딴 원소이름도 여럿이고, 과학자 이름을 딴 원소는 아주 많아서 퀴리부인 아인슈타인 노벨의 이름은 퀴륨(96번),아인시타이늄(99번),노벨륨(1백2번)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이제 이 자랑스런 과학 명예의 전당 한 곳에 일본이 등록하게 된 것이다. 일본 과학자는 이미 20세기 초에 새 원소를 발견했다 하여 그 이름을 '니포늄'이라 했다가 실수였음이 드러나 잊혀진 일도 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는 일본의 대표적 물리 및 화학 연구기관이다. 1917년 창설된 이 연구소는 말하자면 일본 순수과학 연구의 총본부 노릇을 하는 곳인데, 이번에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될 듯하다. 지금 새 원소찾기에는 미국 러시아 독일 정도가 가담하고 있는데, 이번에 일본이 그 대열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내게 된 셈이다. 0.0003초 만에 사라진 새 원소 한 개가 무슨 실용적 이득을 줄 까닭은 없다. 그리 생각하기로 들면, 자연상태에서 존재하는 원소는 92번 우라늄이 마지막이다. 93번 이후의 원소란 자연상태에는 존재하지 않고, 당연히 금방 사라지는 인공원소이다. 하지만 그런 연구를 통해 한 나라의 과학 수준은 크게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영원히 남겨질 '일본원소(Japanium)'란 이름은 또 얼마나 나라의 과학적 명예를 높이고 국민의 사기를 올려줄 것인가? 그래서 나는 '한국원소(Koreanium)'는 언제나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과학은 꼭 기술수단만이 아니며, 과학은 당장의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수도 없다. 하지만 바로 그런 기초과학을 진흥하지 않고서는 한국이 과학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없고, 우리 2세들이 이공계로 진로를 잡지도 않을 것이며, 그것은 결국 우리를 선진국 문턱에서 맴돌게 만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