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58)의 장편소설 '연인들'(류소연 옮김,다른우리)이 번역돼 나왔다. 옐리네크가 1975년 발표한 이 소설은 여성들에 대한 억압을 고발하고 여성의 자의식을 찾는 데 주력하던 당시 '여성문학'의 시야를 한단계 넘어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가부장적 성(性)질서와 자본주의적 계급질서가 복잡하게 뒤얽힌 현실을 문제삼으면서도 피억압자에게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녀는 여성의 자기모순과 분열을 파헤치면서 여성에 대한 비판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작품은 브리기테와 파울라라는 두 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삶을 대비시킨다. 브리기테는 도시의 공장 노동자에서 성공적인 자영업자의 아내가 된다. 시골 소녀인 파울라는 산림 노동자와 결혼한 뒤 이혼한다.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대립적 가치관을 드러낸다. 성공한 엔지니어인 하인츠와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하는 브리기테는 사랑을 수단화하며 출산과 육아에 혐오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모성을 선택한다. 반면 파울라는 사랑의 결실로서 결혼을 추구하며 행복한 모성을 믿을 뿐 아니라 이를 위해 직업을 포기하고 온갖 폭력을 견딘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매춘과 이혼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파울라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가정도 대중매체가 생산해낸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에 다름아님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파울라의 사랑지상주의가 남에게 잘 보여지길 바라는 자기기만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