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역사는 사회 변혁의 역사와 함께 한다. 귀족과 평민의 의상 구분이 흐트러지고 남녀의 패션이 확연히 구분된 것은 십자군 전쟁이 끝나고 신흥 부르주아 세력이 등장한 14세기 중반 서유럽에서였다. 남자 옷은 길고 느슨하던 데서 짧고 몸에 딱 붙는 것,여자 옷은 가슴 허리 엉덩이를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여성들이 꽉 조인 허리와 페티코트를 넣어 부풀린 기다란 드레스에서 벗어난 것은 1,2차 세계대전 덕.프랑스의 샤넬은 신축성 있는 저지를 사용,편하고 실용적인 무릎길이 스커트와 카디건을 만들어냈다. 50년대에 들어서자 맞춤복 대신 기성복이 도입됐고,60년대엔 기성복 확산과 함께 패션의 의미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프랑스의 카사렐은 남자셔츠같은 면블라우스를 고안했고,이어 세계를 놀라게 한 미니스커트가 등장했다. 미니스커트를 처음 만든 건 영국의 메리 퀀트.진저그룹이란 급진적 패션모임을 이끌던 퀀트는 63년 허벅지를 드러낸 짧은 스커트를 내놨다. '도덕성을 잘라낸 옷'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니스커트는 히피바람과 함께 세계로 퍼졌다. 65년 쿠레주의 컬렉션은 이런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쿠레주는 미니스커트에 굽 낮은 산양가죽 부츠,짧은 윗옷 등 편안한 스타일을 제시해 여성들을 답답한 실루엣에서 해방시키는 동시에 미니스커트 스타일을 창출했다. 국내엔 67년 가수 윤복희씨가 입고 귀국하면서 확산됐다. 올 겨울 미니스커트가 대유행이다. 끝부분이 북슬북슬한 어그부츠(안에 양털이 달린 것)와 주름부츠,종아리를 덮는 판탈롱양말,짧은 니트재킷 등도 덩달아 유행이다. 한겨울에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는 이유는 아무도 꼭 집어 설명하지 못한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여학생차림(스쿨걸룩)의 연장선상이라는 해석도 있고,불황일 때 스커트 길이가 올라가는 경향과 연관있다는 설도 있다. '젊게 보이는 게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것보다 중요한 세상'의 흐름을 반영한다고도 한다. 미니스커트가 발랄함과 젊음을 안겨줌으로써 입는 이와 보는 이 모두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바라기는 유행보다 자기 스타일을 찾고,올라가는 치마길이만큼 우리 경제수치도 올라갔으면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