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대립만을 거듭하다 정무위와 법사위의 야당 의원 퇴장과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처리로 이어진 국회의 한심한 행태는 참으로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법안에 대해 여야가 편을 갈라 서로 싸움만 일삼다 결국 여당이 변칙까지 불사하면서 졸속처리해야 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공정거래법은 정치적 이해가 걸린 내용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당과 야당이 정치법안이나 되는 것처럼 나뉘어 대립한 것 자체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 경제의 실질적 주역인 기업들의 호소는 철저히 외면한 채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처리됐다는 점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여당이 내놓은 4대 개혁입법 심의를 위한 여야의 전초전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에 대한 기싸움을 벌인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민생과 직결되는 경제법안을 볼모로 잡아 정쟁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의구심이 든다. 더구나 공정법 개정안의 핵심내용을 두고 위헌성 시비까지 벌어져 있는 마당이다. 이런 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심의와 검토도 거치지 않고 여당이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여 졸속 처리할 만큼 공정법 개정이 그렇게 긴박한 사안인지도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번 공정법 개정안 처리과정을 보면 정부 여당이 과연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나 있는지,기업과 시장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마저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누차 강조해왔지만 출자총액제한제는 시장경제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기업투자를 결정적으로 위축시킬 소지가 큰,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불합리한 규제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축소 문제도 그렇다.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M&A(인수합병) 공격에 국내 기업을 무방비 상태로 내모는 역차별적 규제다. 재계가 그토록 반대하고 철폐를 건의해온 것은 말할 것도 없고,최소한의 경영권 방어장치라도 필요하다는 절박한 호소에도 귀를 막은 채 기업들의 손발을 묶는 입법을 억지로 밀어붙인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공정거래법 개정은 가뜩이나 얼어붙은 기업들의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현실적으로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로 인한 투자위축,고용불안이 심화되면서 경제는 점점 더 회복이 어려운 늪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좀처럼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비상시국이나 다름없다. 개혁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만큼 다급한 과제는 없다. 무엇보다 시장개혁은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 투자가 확대되고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도록 함으로써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회가 공정법 개정 후 앞으로 야기될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