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권위적인 이미지로 비춰지는 법원에도 시민들이 친숙할 수 있는 문화적인 여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1회 전국법원 서예문인화전이 열리고 있는 서초동 법원도서관 중앙홀. 은은한 초겨울 묵향(墨香) 속에 만난 손용근 법원도서관장(사시 17회·서울고법부장판사)은 이번 행사가 법원도서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는 프로그램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동호인전 수준의 법조인 서예전은 더러 있었지만 전국 규모의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소개한 손 관장은 "법원 내부에는 이미 문화적인 기운이 농익어 있지만 법률수요자들인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서비스마인드를 갖춰야 할 때라는 생각에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법원 내 문인화동호인은 물론 전 대법관과 문인화 대가 등 77명이 작품 1백18점을 출품했다. 유태흥 전 대법원장은 '법치민안'(法治民安)을,정기승 전 대법관이 '장부지사해'(丈夫志四海)를 출품했다. 또 박만호 전 대법관이 '사필귀정'(事必歸正),양인평 전 부산고법원장이 '물처럼 맑고 저울처럼 고르다'는 뜻의 '청여수평여형'(淸如水平如衡)을 각각 보내왔다.


특히 목재 허행면(1906∼1966)의 군방도(群芳圖)와 창암 이삼만(1770∼1847)의 8곡 병풍은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손 관장은 "창암 선생은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룬 대가였지만 일반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문화브랜드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손 관장 자신도 '난지귀하'(蘭之貴何)란 서예작품과 사군자를 그린 4곡 병풍 등 3점을 선보였다. 그는 지난 80년부터 석계 김태균 선생을 사사할 만큼 서예와 문인화에 능하다. 한국화 대가인 직헌 허달재 화백과는 수십년 화우(畵友)지간이다.


손 관장은 "경제가 어렵고 세태가 각박할 수록 정(靜) 중(中) 관(觀)(조용히 관조하면 사물을 관통하는 진실이 보인다)의 지혜가 필요하다"며 "전통의 가치에서 여유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년에는 더욱 알찬 전시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10일까지 열린다.


52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손 관장은 헌법재판소 연구관,서울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으며 의료소송 입증관련 논문으로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전효숙 헌법재판관 등과는 사시 동기다.


글=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