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30년은 "시간과의 싸움"으로 요약된다. 후발주자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삼성에게 떨어진 절체절명의 특명은 선두업체와의 간격을 하루빨리 줄이는 일이었다. 삼성은 지난 74년 12월6일 한국반도체 부천공장을 인수,반도체 사업에 발을 들였다. 이후 83년 2월 고 이병철 회장이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던지기 전까지 삼성은 전자 손목시계용 IC(집적회로),컬러TV용 IC 등 초보적인 수준의 제품을 개발했다. 도쿄 선언 이후 10개월만에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64K D램을 독자 개발,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선진기업과의 기술격차는 4∼5년.삼성은 85년 2백56K D램을 개발,기술격차를 3년으로 줄였고 다시 94년 2백56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함으로써 기술격차를 없앴다. 반도체 사업 초기였던 83년 기흥공장을 건설할 때 통상 1년반이 걸리는 공기를 6개월로 단축시킨 것도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삼성의 노력을 보여주는 일화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선진국은 1년반이 걸리지만 우리는) 6개월 내에 완성하라"고 지시했고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부장을 자임하며 건설을 독려했다. 삼성은 설계와 공사를 병행하는 등의 노력으로 6개월만에 공장을 완공해 제품생산을 2년이나 앞당겼다. 기술개발과 함께 삼성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80년대 말∼90년대 초에 반도체 사업의 승기를 잡았다. 일단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만큼 지속적으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야만 후발업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90∼91년의 경기침체기에도 삼성은 투자를 계속,세계 최대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92년 D램 시장 세계 1위,93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세계 1위 업체로 부상했다. 우수인재 확보와 육성을 위한 남다른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은 사업 초기 외국에 있는 한국계 과학기술자들을 적극적으로 스카우트했다. 대표적 인물이 16메가 D램 개발을 이끈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2백56메가 D램 개발을 주도한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 등이다. 삼성은 기술개발 과정에서 현지 법인팀과 국내 개발팀 동시 개발체제를 채택,실패율을 줄이고 '경쟁'을 통해 개발시간도 단축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러한 경쟁체제는 국내 연구진이 성장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고 1메가 D램과 4메가 D램 개발 모두 예상을 뒤엎고 국내 개발팀이 기술대결에서 승리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