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혁신의 적, 지도 감독 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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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30년 신화가 조명을 받고 있다.
성공요인이 어디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최고경영자의 결단력,과감한 투자,우수한 인재 확보,지속적인 연구개발 등이다.
정부 얘기가 없으니 정부로선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정부 역할이 왜 없었겠는가.
정부도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이런 저런 시책을 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 반도체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세계 1위 메이드 인 코리아-반도체'(최영락/이은영)에서는 눈길을 끄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막상 1983년 삼성이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하자 정부 관리들 중에는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경제기획원의 한 관리는 "사업성도 떨어지고 돈도 많이 드는 반도체를 왜 하겠다는 말인가. 차라리 신발산업을 밀어주는 게 낫다"라며 비난하기도 했다…중략…기업들이 열성을 보이자 처음에는 회의적인 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책을 폈다.1985년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느낌을 갖게 한다.
그래도 기업이 하겠다고 나서니 방해하지 않고 지원해 준 것이 어딘가.
얼마 전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관련해 "공정거래법 중 출자총액제한제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이 새로운 부문에 투자를 하려고 해도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책임 아래 이뤄지는 자산운용에 대해 (정부가)왜 간섭하는 것이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는 '기업은 항상 지도하고 감독해야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정부 여당의)잘못된 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지원은 안해줘도 좋으니 제발 규제만이라도 풀어달라는 얘기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답답하기만 하다.
대통령도,그 주변에 있는 학자들도 한결같이 "기업들이 지금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수익모델을 못찾았기 때문이지 출자총액제한제 탓이 아니다"라고 한다.
마치 민간부문에서 엄청나게 사업경험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 말하듯 한다.
하지만 정부 눈에 수익모델로 비칠 정도면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운 수익모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일부 기업'만 이 제도로 불편할 뿐이라며 이를 문제삼는 건 그 일부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정부는 간주해 버리는 듯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 일부 기업은 바로 오늘날 반도체 CDMA같은 한국의 대표적 혁신신화를 만든 기업들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정부가 예측한대로 과연 돌아가고 있는가.
정책의 불확실성이 지금같은 때가 또 있었는가.
요즘 기업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으니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기업들에 그런 생각을 심어준 것은 이 정부가 가장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그게 속 편한 생각일 수도 있고….하지만 도와주진 못할망정 규제는 풀어줘라.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는 해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심정은 비단 기업만이 아닌 모양이다.
"정부 지원으로 어느 한 과(科,department)를 육성하는 것보다 육성을 안하더라도 정부 간섭을 받지 않는 게 더 낫다."
지난달 19일 한·스웨덴 국제학술대회에서 로버트 러플린 KAIST 총장이 한 강연의 일부 대목이다.
정부 지원도 좋지만 대학은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어디 KAIST 총장만의 생각이겠는가.
미래를 준비해야겠다고 나서는 이들에게 정부는 선택권과 자율성을 돌려줘라.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