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3백여억원의 자본금을 가장납입하는 방법으로 2천여개의 부실회사를 설립,수수료와 수신고 확대 등의 이익을 챙긴 사채업자와 은행 지점장 등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국민수 부장검사)는 3천3백여억원의 주식대금을 가장납입한(상법위반) 사채업자들과 이를 묵인한 은행 관계자 등 17명을 적발했다고 7일 밝혔다. 검찰은 이 중 김모씨(46·여) 등 자금 제공자 역할을 한 전주(錢主) 2명과 알선업자 김모씨(38)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나머지 사채업자 7명을 불구속기소하는 한편 은행원 7명의 명단과 비리 사실을 해당 은행과 금감원에 통보했다. ◆구조적 금융비리=검찰에 따르면 전주 김씨는 지난해 4월부터 올 7월까지 J사 등 주금가장납입 전문 알선업체에 1천8백94억여원을 대여한 뒤 1천2백55개 주식회사의 주금을 가장 납입해주는 대가로 의뢰인들로부터 4억여원의 수수료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2002년 11월부터 올 7월까지 1천13개 회사에 1천5억여원의 주금 가장납입을 대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문 알선업자 김씨는 전국의 법무사 사무실에 홍보 전단지를 돌리는 등 적극적인 '고객' 유치에 나서기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알선업자들은 주금 납입을 의뢰한 회사의 대리인으로 행세하며 전주의 돈을 은행에 주금으로 납입하고 증명서를 발급받아 회사의 설립 등기를 마친 뒤 즉시 돈을 전액 인출해 전주에게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주금 가장 납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들에게 회사 설립을 부탁한 의뢰인들은 대부분 설립 절차가 끝나고 회사 명의로 어음을 발행한 뒤 고의로 부도를 내 현재 이들이 남발한 천문학적 액수의 부실어음들이 서울 명동 등 사채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실적 때문에' 철저히 뒤를 봐준 은행=전주와 알선업자들이 회사 설립 등기 완료와 함께 은행에 예치했던 돈을 전액 인출할 수 있었던 것은 A은행 관계자들의 방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특히 A은행 한 지점에서는 수신고를 올리기 위해 한 회사의 자본금으로 사용한 자금을 특별한 절차없이 곧바로 다른 회사의 설립 자본금으로 입급시키는 등 변칙 처리에 앞장선 것으로 조사됐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 지점간 치열해진 실적 경쟁이 은행과 사채업자간 결탁 배경이라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가장 납입에 가담한 A은행 관계자 7명의 명단을 해당은행에 통보,현재 이들은 모두 파면 또는 감봉 등의 중징계를 받은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한 지점장이 다른 지점으로 옮기면 전주도 자신의 예금을 그쪽으로 옮기는 등 전주들과 은행이 철저하게 유착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증거를 확보할 수 없어 형사처벌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