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노무현 대통령의 '파리 발언'과 이헌재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블룸버그 인터뷰 내용이 이목을 집중시킨 건 다름아닌 타이밍 때문이다. 이틀 후인 9일 콜금리 조정을 결정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약속이나 한 듯 '유연한 재정.통화정책'을 한 목소리로 강조한 것은 한은에는 '콜금리 인하 압박'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통화신용정책의 독립성'을 강조해온 한은은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내심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시장은 이미 '콜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는 분위기다. 이날 채권시장에서 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에 비해 0.04%포인트 낮은 3.24%로 떨어지며 콜금리(연3.25%)보다 낮아졌다. ◆한국은행 압박하는 정부 재경부는 이날 블룸버그통신이 "이 부총리가 내년에 5%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일자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진화에 나섰다. 재정·금융정책 등 거시정책 기조가 경기순응적으로 운용돼야 한다는 이 부총리의 평소 지론을 표현한 것일 뿐,직접 금리인하 여부를 언급하지는 않았다는 게 해명자료의 요지다. 재경부 관계자는 "박승 한은 총재가 지난 10월 '재경부만 쳐다보는 시장 참가자들은 손해를 봐야 한다'고 말하며 금리를 동결한 것보다 한은의 독립성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며 "설사 부총리가 금리인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더라도 그건 압력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총리 발언을 외압으로 받아들이거나,이에 대응하는 식의 감정적인 콜금리 결정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직접 '유연한 통화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맞물려 정부가 한은에 대해 금리 추가인하 압박의 강도를 한층 높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당혹스러운 한국은행 이 부총리의 금리인하 발언에 대한 한은의 반응은 한마디로 '불쾌하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한은 관계자는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겠느냐"며 "도대체 이 상황에서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9일 금통위에서 추가 금리인하 결정이 내려질지에 대한 한은 내부의 분위기는 여전히 부정적인 쪽이다. 유가 안정으로 물가 부담이 줄어든 것은 분명하지만 금리가 사상 최저수준인 데다 시장에 풀린 자금도 풍부한 상황에서 오히려 자금시장 왜곡 등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는 정책을 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은의 또다른 관계자는 "지난 8월 유가가 급등하고 물가압박이 심각했던 상황에서 정부의 경기대책에 순응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했고,11월에도 한번 더 내렸으면 할만큼 한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시장에선 '추가 인하'전망 확산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달 들어 가장 큰 변동폭을 보이며 콜금리 목표치 3.25%를 뚫고 내려앉았다. 미국계 리먼브러더스증권사도 9일 금통위에서 콜금리가 0.25%포인트 더 내려갈 것이라는 보고서를 이날 내놓았다. 최석원 한화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이 부총리의 발언이 시장의 변동폭을 키웠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한국은행도 금리인하의 부작용을 너무 크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연간 4회 정도 금리를 조정하는 데 비해 한은은 평균 2회 정도에 그치고 있어 좀더 적극적인 정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최 팀장은 최근 시장 분위기에 대해 "채권시장에 매도는 없고 매수만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리스크 관리차원으로 봐야 한다"며 "금리인상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절대금리가 낮아도 채권을 사지 않으면 그게 곧 리스크가 되는 것으로 시장은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차병석·김용준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