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경제 가라앉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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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바닥을 뚫고 끝모를 '지하'로 가라앉는가 싶더니 한국은행 총재 입으로부터 "민생고통이 5년 갈지,10년 갈지 모르겠다"는 탄식까지 나왔다.
재정경제부는 내년 성장률 5%를 달성하겠다며 '한국판 뉴딜'까지 동원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한은은 '그래봐야 4%'라는 답안지를 내놓았다.
경기가 갈수록 뒷걸음질치면서 정부가 허둥대는 모습만 역력해지고 있다.
재정만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콜금리 인하 문제를 놓고 한은과 몇달째 공개적으로 엇박자를 내는 모습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도대체 경기를 풀 마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요즘이다.
유가 등 원자재 급등과 달러약세,과거 정권이 빚었던 가계거품 후유증 등 경기가 가라앉는 이유는 숱하게 거론된 터다.
정부는 재정을 있는대로 다 동원하고,한은은 올 하반기에만 두 차례나 콜금리를 내렸지만 얼어붙은 경기는 꿈쩍일 기미조차 없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의 며칠 전 말마따나 거시정책에 관한 한 '백약이 무효'이고,속수무책이다.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는데,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을 옥죄는 법에 매달리며 기업경쟁력 제고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쪽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게 박 회장의 푸념이었다.
어디 그만의 인식이겠는가.
상황이 이쯤 됐으면 우리 경제의 무엇이 문제인지를 솔직하게,근본적으로 따져볼 때가 됐다.
시중에 4백조원이 넘는 단기자금이 떠돌고 있는데 '뉴딜'은 무엇이며,금리를 더 내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건 또 무슨 얘긴가.
왜 시중 여유 자금이 산업자금으로 돌지 않고 있는지,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
출자총액 제한으로 인해 마음껏 신규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고,의결권을 제한받는 바람에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아까운 돈을 돌려쓰고 있다는 기업들의 아우성은 그저 '경제위기 조장'이나 '개혁 저항'일 뿐인가.
경제 최전선을 뛰고 있는 기업들이 기를 쓰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 한번쯤은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게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도리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제대로 대화 한번 않은채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확정짓고 말았다.
그렇다고 시장에서의 진입 퇴출을 원활하게 해 산업의 신진대사를 활성화하려는 노력도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경쟁력을 상실한 채 금융지원과 세금보조에만 매달려 연명하고 있는 한계기업을 신속하게 퇴출시켜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싹트도록 하기 보다는 '떼법'과 '정서법'에 채여 시장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기업들이 생존능력을 극대화해나갈 수 있도록 체질 강화를 유도하고,그래서 경기의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유럽 순방 도중 '미국식'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며 경쟁주의 모델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밝힌 건 기업들을 더욱 맥빠지게 하고 시장참가자들의 기운을 빼놓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미국이건 유럽이건 경제가 불황의 늪을 탈출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던 때는 '시장경쟁'이 최고조로 활성화됐을 때였다.
영국과 독일,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들이 '약자 보호'라는 선의(善意)가 지나쳐 경제가 동맥경화현상을 보이자 '제3의 길'이라는 이름아래 시장경쟁 요소를 강화해나가고 있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무엇이 경기의 숨통을 죄고,경제의 백년대계를 흐리게 하는 것인지 새삼 '토론'이 필요한 건지 답답할 따름이다.
이학영 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