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했던 내년 경기회복 기대는 완전히 물건너갔다. 한국은행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정부가 장담해온 '5%'에 훨씬 못미치는 4%를 제시했고, 이헌재 경제부총리도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성장률 수치가 문제가 아니라 고용 없는 성장과 계속되는 구조조정 속에서 민생 어려움은 앞으로 5년이 갈지,10년이 갈지 알 수 없다"고까지 진단했다. 통계청 조사에서는 가계 소비심리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침체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나락에 빠져있다는 얘기다. ◆소비침체 장기화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상반기 3.4%,하반기 4.4%로 내다봤다.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경기가 곤두박질을 계속할 것이란 진단인 셈이다. 한은은 경기가 당분간 살아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가장 큰 요인으로 얼어붙은 민간소비를 꼽았다. 이주열 한은 조사국장은 "GDP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어 회복을 점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간소비는 2003년 1분기 이후 2년간 마이너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국장은 "올해 4분기에도 민간소비는 0.9%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내년 상반기까지 그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이 끝나지 않은 가계부채,고용 없는 성장이 내수 회복을 훨씬 더디게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건설투자 위축속 수출도 둔화 고용효과가 큰 건설투자도 올해 4·4분기 0.5% 성장에 그친 데 이어 내년 상반기에는 마이너스로 추락,체감경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 것으로 예고됐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시장 규제조치가 완화되지 않는 한 내년 건설투자 증가율은 상반기 마이너스 0.2%,하반기 1.0%로 연간 고작 0.5% 증가에 그칠 것이란 게 한은의 전망이다. 올해 2·4분기와 3·4분기 중 6%대 성장을 보여 그나마 위안이 됐던 설비투자는 4·4분기 4.0%,내년 상반기에는 2.8%로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덧붙였다. 그나마 경기를 지탱해온 수출전선도 내년에는 더이상의 호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수출은 올해 31.3% 증가하는 폭발적인 호황을 보였지만 내년에는 7.3%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라 올해 2백75억달러에 이를 전망인 경상수지 흑자도 내년에는 1백60억달러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고됐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소비와 설비투자 등이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U자형 회복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게 한은 분석이지만,여전한 원자재 대란과 환율 등 불안한 요소들이 산재해있어 낙관은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 체감경기도 갈수록 '꽁꽁' 기업과 가계의 체감경기는 더욱 심상치 않다. 통계청이 조사한 지난달 소비자 기대지수가 86.6으로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고,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 6백대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내년도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역시 78.7로 기준치 100을 크게 밑돈 것으로 나왔다. 대기업들의 작년 실적과 비교한 올해의 실적BSI는 62.5로 조사됐다. 전경련 조사에서 기업들은 경기 회복시기와 관련해 43%가 내년 하반기를,41%는 오는 2006년을 꼽았다. 내년 상반기를 전망한 응답은 1%에 불과했다. 향후 몇년간 경기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한 업체도 15%에 달했다.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내수부진의 주요 원인에 대해서는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60.0%)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다음으로 '과도한 가계부채'(17.4%),'미래소득 불확실'(7.7%) 등의 순으로 답했다. 경기회복을 위한 정책대안과 관련,60%가 정치·정책적인 불확실성 제거를 들었으며 이어 규제완화(19%),재정확대(11%),감세정책(8%) 등을 제시했다. 김용준·장경영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