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 태평로클럽에 세계 TV 세트업체와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삼성SDI가 기존 브라운관(50cm)보다 두께를 무려 15cm나 대폭 줄인 35cm 초슬림 브라운관인 32인치 디지털TV용 '빅슬림'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빅슬림은 LCD와 PDP에 비해 두껍다는 브라운관 TV의 최대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품. 실제로 32인치 LCD TV의 경우 본체 두께가 10∼15cm이지만 DVD플레이어,홈시어터 등을 함께 사용할 경우 최소 30∼40cm의 공간이 필요해 결국 빅슬림을 채용한 TV(38cm)와 별 차이가 없다. 게다가 빅슬림 브라운관 TV의 예상 판매가격은 1천달러 안팎.아직까지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가 제품인 LCD와 PDP에 비해 확실한 가격경쟁력을 갖췄다. 삼성SDI는 빅슬림 개발을 통해 사양·굴뚝 사업으로 여겨져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잊혀져 가던 브라운관의 치명적인 약점인 두께를 줄여 '흑백→컬러→평면→슬림'으로 이어지는 브라운관 '제4 전성기'의 서막을 열었다. 삼성SDI가 브라운관 두께의 '마(魔)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5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V프로젝트'팀을 결성한 것은 지난 99년. V프로젝트 팀은 1년 후 첫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성능은 떨어지고 가격은 올라가는 씁쓸한 결과를 맞아야 했다. 그러나 도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연구원을 10명으로 늘려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3차원 입체설계 기술을 도입,수만개의 모델을 만들어 검토했다. 수원사업장에 위치한 TDC센터라는 연구동에서 20명으로 늘어난 개발 설비 구매 영업 등 각 부문의 핵심 인력들이 1년에도 2∼6개월씩 숙식을 함께 하며 치열하게 매달린 결과 지난 7월19일 빅슬림을 세계 최초로 내놨다. 삼성SDI는 빅슬림 개발 당시부터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코닝과 함께 빅슬림에 쓰이는 유리,DY(편향코일) 등 부품부터 TV 세트까지 동시 양산체제를 구축하고 4개사의 전문가들로 '조기양산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활동해 왔다. 삼성SDI는 부산공장의 기존 29,32인치 초대형 TV용 브라운관 생산라인을 빅슬림 브라운관 겸용 라인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공사를 지난 10월 중순 완료하고 10월 말부터 양산체제를 갖췄다. 이에 따라 늦어도 내년 초에는 삼성전자 등 TV 세트업체가 빅슬림 브라운관을 채용한 TV를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 기술지원본부장 변창련 상무는 "빅슬림 개발은 브라운관 사업이 사양·굴뚝 사업이 아닌 최첨단 디스플레이 사업이라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빅슬림을 통해 세계 최대 브라운관 업체의 지위를 확고히 하며 브라운관 제4 전성기를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조만간 28·29·34인치 제품도 차례로 개발,다양한 제품군을 형성할 계획이다. 또 빅슬림보다 더욱 얇은 고화질의 20cm대 32인치 초슬림 브라운관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