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국제 비즈니스세계에선 지진아였던 모양이다. 도널드 그레그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이 들려준 일화는 당시만 해도 한국과 비즈니스를 하는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실감케 했다. 그레그 회장이 주한 미국대사로 있던 90년대초 상공부는 수입이 급증하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추진했던 항공기 도입을 미뤄버렸다.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편법을 쓴 것이다. 이같은 조치는 비행기를 적기에 도입하려 했던 기업에 날벼락이었고 계약이행만 기다리던 보잉 등에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보잉은 그레그 전 대사에게 항의성 전화를 걸었고 그때부터 그는 항공사와 상공부를 뛰어다니며 계약이행을 촉구했다고 한다. 그레그 전 대사는 얼마전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한국기업의 인수합병이나 합작법인 설립에 관한 세미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같은 경험담을 소개했다. 불과 10여년전의 일이지만 초스피드로 달리는 한국에선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만큼이나 먼 옛날 얘기같다. 한국은 그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회 전분야에서 국제기준을 도입했다. 하지만 한국 기업과 비즈니스를 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운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변호사는 한국에선 의사결정을 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가지를 얻으면 다른 한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협상에 익숙지 않으며 정부에는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없다는 등 자신이 겪었던 문제점을 조목 조목 지적했다. 게다가 거래를 결정해야 할 당사자들이 서로 책임을 지려하지도 않고 양해각서(MOU)에 대한 인식도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구속력이 없는 MOU는 미국에서 협상을 성실하게 하겠다는 의지 외에는 법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데 한국에선 마치 모든 것이 이뤄진 것처럼 언론에까지 공개해버린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국제화 편입이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외국 기업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 토양이 조성되기까지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있음을 느끼게 한 세미나였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