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9일 오후 5시 바다의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해성(海星) 이맹기(李孟基) 회장님의 영전에 해운계를 대표해 회한과 감사와 추모하는 마음의 글을 바칩니다. 선생님께서는 광복 후 해군에 입대해 참모총장을 역임하시고 (옛)해운공사 사장을 거쳐 대한해운을 창립,한국 해운업계 4위의 대기업을 이룩하셨습니다. 해군 합참시절 사병제일주의로 존경을 한 몸에 받은 것은 물론 해운업계에 발을 들여놓으신 후에도 해외송출업을 일으켜 후배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하시는 등 해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또 15년 간 세 번에 걸쳐 선주협회 회장으로서 남긴 족적은 현대 한국해운사 그 자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60년대 중반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이나 장관취임 제의을 받고도 "기업으로 보국하겠다"며 사양하신 일이나 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수출선박에 대한민국 국적을 허용하는 법안이 상정됐을 때 '아무리 수출이 급하더라도 국기까지 끼워서 팔 수는 없다"며 반대하신 일 등은 선생님의 기업입지가 투철한 국가관에 있었음을 방증합니다. '경영자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라는 경영철학에 입각해 본인의 지분을 제한하고 종업원지주제를 고집하셨습니다. "사장도 월급쟁이다"며 엄격한 공사(公私) 구분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중역회의에서 일부러 코를 고시며 부하들의 자유로운 토론을 유도하신 일 등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저희 후배들에게 바른 경영인의 사표(師表)였습니다. 74년 안양CC에서 우연히 만난 박 대통령으로부터 '같이 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일행이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말씀도 거절한 만큼 약속과 신용을 중하게 여기셨으며 항상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로 일관하셨습니다. 그러나 남에게는 자상한 성품의 소유자였으며 남모르게 베푸는 따뜻한 인정은 깊은 샘과 같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깊고 넓고 맑은 큰 기둥이 쓰러졌습니다. 선생님의 타계로 한국 해운계는 큰 별을 잃었습니다. 비록 별이 없는 어두운 뱃길이라 하더라도 남은 우리들은 선생님의 뜻을 이어 더 넓은 대양으로 나가겠습니다. 그 길만이 선생님으로부터 우리가 입은 은덕에 보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회장님,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04년 12월12일 永訣에 부쳐. 박종규 KSS해운 명예회장ㆍ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