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빈 < 경상대 교수ㆍ농업경제학 > 우여곡절 끝에 2004년 쌀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든 느낌이다. 아직도 중국 미국 등 주요 쌀 수출국들과의 최종 조율과정이 한두차례 더 남아 있지만 조만간 우리는 관세화 유예로 갈 것인지,아니면 다른 품목들과 같이 관세화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금번 쌀 협상은 WTO 농업협정의 기본원칙인 예외없는 관세화에 대한 '한시적 예외조치'의 시한만료에 따른 후속 협상의 성격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관세화를 통해 쌀시장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면, 쌀 협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국내농업의 근간이며 뿌리라 할 수 있는 쌀만은 다시한번 관세화 유예를 연장한다는 것이 기본방침이었기 때문에 이해 당사국인 9개 쌀 수출국들과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2004년 이후에도 쌀의 관세화 유예라는 특별취급을 계속 적용받기 위해서는 쌀 수출국에 일정수준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금번 협상은 우리 쌀의 관세화 유예 연장의 대가와 관련, 미국 중국 등 쌀 수출국들과 그 세부조건을 타협하는 협상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8% 수준의 의무수입물량과 10년의 관세화 유예기간이라는 양적인 협상쟁점에 대해서는 이해당사국들과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상태이다. 당초 수출국들이 요구하던 15∼20%선의 의무수입 물량과 길어야 5년간이라는 유예기간 허용 입장을 감안하면 양적인 쟁점에 관한한 우리측 입장이 상당부분 반영된 상태에서 쌍방간 타협점을 찾은 듯하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에 대한 소비자 시판, 민간수입허용, 수입쌀 유통기한 문제 등 질적인 협상쟁점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쌍방간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수출국들은 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의무수입물량중 상당한 물량을 가공용이 아닌 식용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의무수입물량의 일정부분을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이 수입하고, 수입된 쌀을 주어진 기한내 유통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측에 요구하고 있다. 수출국들이 자국의 실리 확보차원에서 내건 이러한 질적 협상쟁점에 대한 요구 수준을 현 상태에서 우리측이 수용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예를 들어 대만의 경우 관세화 유예 대가로 수출국에 보장한 의무수입물량의 최소 35% 수준 이상의 민간수입 허용과 수입쌀의 유통기간 제한 조치가 대만 국내 쌀값 폭락의 주요 요인이 됨으로써 오히려 관세화 유예를 통한 쌀 산업보호라는 실질적인 목적 달성을 불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조만간 금번 협상의 결과는 관세화 유예든,관세화로의 전환이든 쌀 시장개방의 형식에 대한 우리의 선택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개방형식이 국내 쌀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좀 더 최소화할 것이냐를 우리의 선택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쌀 협상과 관련한 국내의 동향은 아직도 협상전 혹은 협상 초기단계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관세화 절대반대' 혹은 '관세화 유예도 일정수준 이상의 대가 지불 반대' 등 최종 협상단계에 어울리지 않는 각계각층의 입장 대립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앞으로 정부는 얼마 남지 않은 협상과정에서 관세화 유예를 위한 세부조건들이 우리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타결되도록 협상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그런 후 최종 협상결과를 가지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쌀 시장 개방방식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선택을 위한 국민여론 수렴과정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금번 쌀 협상의 결과로 관세화 유예가 연장되든 또는 관세화로 전환되든 간에 우리나라 쌀 시장의 개방 확대는 불가피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향후 협상결과에 대한 여론 수렴과정이 정부 쌀 협상팀에 대한 비판이나 농업과 비농업계, 혹은 농업계 내부의 갈등 증폭이 아닌 쌀 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토론의 장이자 국민공감대 형성의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