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 반도체용 기판 개발팀은 올초 '2007년에 출시될 차세대 제품을 개발하라'는 주문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머리카락 굵기의 4분의 1에 불과한 각종 회로들이 얽혀 있는 기존 기판보다 회로선폭이 2배 이상 좁은 제품을 만들어내는게 이들에게 떨어진 일이었다.


다른 건 별 문제 없이 해결됐지만 회로에 금속도금을 입히는 문제는 도저히 풀리지 않았다.


도금 표면을 균일하게 하기 위해선 도금 두께를 최대한 얇게 해야 하지만,이럴 경우 상당수 회로에 도금액이 침투하지 못하기 때문.도금을 두껍게 하면 침투 문제는 해결되는 반면 표면을 균일하게 처리할 수가 없었다.


도금액의 성분을 바꿔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허사였다.


불량률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트리즈(TRIZ) 기법을 적용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트리즈란 '창의적인 문제해결'이란 러시아어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러시아 발명가 겐리히 알츠슐러가 1946년 개발한 '발명 방법론'.그는 "천재가 아니어도 발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 50여년간 전 세계에서 출원된 특허 2백만건을 분석한 뒤 새로운 발명이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공통된 유형과 방법론을 찾아내 프로세스화했다.


다른 산업이나 공정에서 유사한 모순을 해결한 경험을 원용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법이 바로 트리즈다.


남창현 선임연구원은 '도금을 얇게 해야 하지만 얇게 해서는 안되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트리즈 기법상 '시간에 의한 분리'와 '공간에 의한 분리' 원칙을 적용했다.


이러자 해결책이 나왔다.


도금 두께가 얇아야 할 부분과 얇지 않아도 될 부분을 구분한 뒤 도금을 나눠서 실시한 것.'도금은 한번에 해야 한다'는게 워낙 오래된 관행이었기 때문에 분리해서 도금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효과는 대만점.불량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설비를 바꾸지 않고 공정 프로세스 개선만으로 이만큼의 성과를 올린 것이다.


이를 확대 적용할 경우 효과금액이 연간 수백억원에 달할 것이란 게 회사측 설명이다.


삼성전기는 최근 수원사업장에서 '트리즈 경진대회'를 열고 이 사례를 비롯한 12건을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회사측은 올 한해 트리즈 기법을 활용해 26건의 특허를 따냈으며,1백억원이 넘는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기는 2001년 시범도입한 트리즈가 큰 효과를 내는 것으로 검증되자 올 들어 모든 연구개발 과제에 대해 이를 의무적용토록 한 데 이어 내년에는 해외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등 '트리즈 경영'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