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미국에서는 연말에 '이름없는 천사'를 찾는 취재경쟁이 벌어지곤 했다. 15년 동안이나 이름을 숨긴 채 6억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쾌척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는 찰스 피니라는 공항면세점 체인의 사장이었는데,면세점의 일부를 매입한 새 주인이 회계장부에서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내역을 발견하고 뉴욕타임스에 제보하면서 신원이 밝혀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모습이었다. 허름한 양복에 손목에는 고작 15달러짜리 시계를 차고 있었다. 자동차도 집도 변변치 않았다. 기자가 묻는 기부 동기에도 그의 대답은 아주 소박했다. "내가 필요한 이상의 돈을 모았지요. 돈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미담은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일어나 메마른 마음을 적시곤 한다. 특히 세밑을 맞아 들려오는 숨은 선행들은 "그래도 인정은 살아있구나"하는 느낌을 갖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요즘 익명의 릴레이기부가 화제다. 크게 여유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천만원대의 큰 돈을 불우이웃 성금으로 내고 있으니 감동을 불러 일으킬 만도 하다. 이들뿐이 아니다. 환경미화원이 김치를 담가 양로원 등의 불우한 이웃들을 찾아 보살피는가 하면,지체가 성치 않은 장애인이 어렵사리 한 두푼 모은 돼지 저금통을 내놓기도 한다.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할아버지가 아껴둔 용돈을 후원금으로 보내기도 한다. 올해도 구세군 냄비에는 두툼한 1만원권 다발이 놓여지고,동사무소에 돈이 든 쇼핑백을 소리없이 놓고 가는 선행자들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왼손도 모르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얼굴없는 의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잠시나마 세상의 각박함을 잊는다. 한 사람의 온정은 비록 하찮다해도 이것이 모이고 쌓이면 내가 되고 강이 된다고 하지 않은가. 인정은 베풀수록 깊어지고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계절이다. 몸과 마음이 시린 연말의 겨울은 이렇듯 이름없는 천사들 때문에 훈훈한 온기가 느껴지는가 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