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매출 25조원의 거대기업 LG전자가 18평짜리 동네 야채가게 에 몸을 낮추고 한 수 지도를 요청했다.


독특한 마케팅 기법으로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야채가게의 판매노하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다.


14일 정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후문에 위치한 '총각네 야채가게'.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20여명의 총각네 야채가게 판매사원들 틈바구니에 LG전자 직원 2명이 끼어 야채와 과일을 팔고 있다.


LG전자 직원들의 서툰 솜씨에 일명 '마당쇠'로 불리는 변정웅 판매사원(28)의 지적이 이어진다.


"아이구∼.그러면 안돼요.


손님한테 돈 받을 때는 반드시 두 손으로 받아야지요.


웃는 얼굴 유지하고 목소리도 좀더 높이세요."


가게는 주부들로 가득차 있다.


평소 안면이 있는 아주머니가 지나치자 변씨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어머님,오늘 화장발 잘 받았네요."


가게를 지나치려던 주부가 발길을 돌린다.


"아이구,마당쇠 총각.곶감 하나 줘봐."


한 아주머니가 자동차를 몰고 매장 근처로 들어서자 '살인미소' 한상훈 판매사원(26)이 뛰어나간다.


"내리세요.


발레파킹(주차대행)해 드릴게요."


다른 직원은 5천원어치 파와 무를 배달하기 위해 매장을 나섰다.


도곡동에 사는 김은경씨(61)는 이 점포를 찾는 이유를 "물건이 좋고,가격도 적당하고,직원들이 친절하니 믿음이 가서"라고 설명했다.


웬만한 먹거리는 이곳에서 모두 해결한다는 양순자씨(50)는 "1만원어치 사러 왔다가 직원들 서비스에 반해 2만∼3만원어치씩 사가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판매 솜씨를 지켜본 LG전자 직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저도 4년째 대리점 영업을 하면서 판매 노하우를 익혔지만 주부 마음을 사로잡는 건 도통 어렵던데…."(LG전자 하이프라자 대치점 이봉제 판매사원·28)


"주부들을 나의 '팬'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일해보세요.


'전자제품'이 아닌 '즐거움'을 판다는 기분으로요.


손님 얼굴도 외워야지요.


저는 수첩에 주요 고객들의 가족사항이나 집안 대소사를 메모한 뒤 방문할 때마다 '아드님 잘 지내죠'라는 식으로 인사말을 건넵니다.


벌써 제 팬이 2백명은 될 거예요."(변씨)


이번엔 LG전자 김진일 판매사원(27)이 물었다.


"요즘 고객들은 인터넷으로 가격 검색을 하고 오기 때문에 물건 팔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조금이라도 비싸면 곧바로 발길을 돌리거든요."


변씨의 대답이 이어졌다.


"웬만한 가격차이는 품질과 서비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당신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손님이 느끼도록 해주는 겁니다.


수능시험을 앞둔 자녀가 있는 주부 고객에게 사비를 털어 찹쌀떡을 사주는 판매사원이 있는데 어떻게 다른 가게를 찾겠습니까."


변씨는 "야채건 전자제품이건 마케팅의 기본은 고객 관리"라며 "LG전자도 제품을 판매한 뒤 콜센터직원이 아닌 판매사원이 직접 고객에게 '해피 콜'을 해주는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95년 대치동 18평짜리 가게에서 출발한 총각네 야채가게가 10년만에 10개 매장에 연매출 2백억원의 어엿한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일명 '오팀장'으로 불리우는 오강신씨(33)는 "총각네 야채가게의 경쟁력은 '직원 만족'에서부터 나온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기분 좋아야 고객 응대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그래야 완벽한 팀워크를 이룰 수 있고 고객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거든요."


LG전자는 이날 총각네 야채가게와 마케팅 및 유통 분야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앞으로 대리점 판매사원들을 내보내 이 회사의 '감성 마케팅' 노하우를 전수받기로 했다.


또 LG전자 서울 대방점 등 서울시내 5~6개 대리점 안에 총각네 야채가게를 들여놓는 등 새로운 마케팅도 시행키로 했다.


LG전자는 대신 총각네 야채가게에 LG전자의 조직운영 기법과 인재육성 기법 등 다양한 관리기법을 전수키로 했다.


'골리앗과 다윗'의 협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 궁금하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