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자업계에 최강의 '연합군'이 결성됐다. 삼성전자와 소니가 거의 모든 사업분야에서 포괄적인 상호특허 사용계약에 전격 합의한 일은 무한경쟁 시대에 각개 약진을 거듭해온 전자업계에 일대 충격파를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각 분야에서 양사와 경쟁해온 업체들로선 삼성-소니라는 막강한 동맹군을 상대로 글로벌 전략을 재편해야할 부담을 안게된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소니는 디지털 전자제품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시장지배력과 기술선도력을 갖고 있는 업체들이어서 더욱 시너지가 클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자신이 취약점을 갖고 있는 기술을 무료로 지원받을 수 있게 돼 신제품 개발기간과 개발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 양사를 합쳐 2만여건에 달하는 상호특허 공유는 기업 인수·합병(M&A)에 버금가는 기술통합 효과를 가져다줄 전망이다. ◆날개 단 삼성전자 지난 80∼90년대 세계 전자업계를 풍미했던 소니의 위력이 최근 몇 년 사이 퇴색했다는 평가가 없지 않지만 비디오 오디오 TV 등의 분야에서 소니가 갖고 있는 영향력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브랜드 가치와 시장 장악력도 뛰어나다. 여기에다 소니는 일찌감치 육성해온 영화 게임 등의 소프트웨어 사업을 가장 효과적으로 디지털 산업에 접목시킬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삼성은 이 같은 소니의 강점을 자사의 주력 사업에 본격 접목시킬 수 있는 호기를 맞게 됐다. 삼성은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사업 등에 강점을 갖고 있지만 컴퓨터 가전 등의 글로벌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더욱이 휴대폰 캠코더 DVD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 융·복합화가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자제품의 원천기술을 다량 확보하고 있는 소니의 지원은 삼성전자에 천군만마의 효과를 가져다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삼성은 또 이번에 세계 시장에서 기술표준을 주도하고 있는 소니와 대등한 동맹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글로벌 위상을 제고하고 제품 포트폴리오 구성과 제품력을 구현하는 데도 위험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제휴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경쟁시대에 스피드 경영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디지털 강자 꿈꾸는 소니 아날로그 전자시대를 제패했던 소니로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플래시메모리와 휴대폰,디스플레이 사업 등의 눈부신 전개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디지털 사업역량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디지털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비디오 오디오 TV 등에서 차지하고 있는 절대강자의 위치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소니의 최대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디지털 TV를 포함한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서 삼성의 일부 기술력은 소니를 앞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미국 MIT가 발표한 세계 전자업계의 특허인용(엔지니어들이 신기술을 발표할 때 인용하는 특허기술) 횟수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7백22건으로 2위 소니의 2백건을 압도했다. 정보통신 분야 역시 삼성이 1위,소니는 4위로 나타났다. 결국 소니는 비록 시기를 놓치긴 했지만 이제라도 삼성과의 적극적인 기술공유를 통해 디지털 분야의 뒤처진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지적이다. 소니의 이 같은 전략은 보수적인 의사결정으로 진입시기를 놓쳐버린 LCD(액정표시장치)사업의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세와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