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제언-금융틀 다시 짜자] <1> IMF식 개혁의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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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말 터진 외환위기는 '위장된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대기업과 은행이 결탁해 있던 재벌구조를 대수술했고,그 결과 한국 경제의 근본체질이 훨씬 튼튼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벌여온 일들이 기초체력을 탄탄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밀어붙인 은행 대형화 정책과 각종 금융개혁 조치들이 거꾸로 부작용들을 양산하면서 국내 금융산업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는 것.
◆외국자본 우대 정책의 폐해
금융계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시킨 은행들에 새 주인을 찾아주면서부터 금융산업의 또다른 왜곡이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금융산업발전 기여도'라는 모호한 기준을 은행 인수의 자격 기준으로 내세워 거의 모든 은행들을 외국 자본에 고스란히 넘겨줬기 때문이다.
경위야 어쨌든 '기여도' 평가항목에서 외국 금융자본이 언제나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토종자본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경영능력이 없는 것으로 매도당한 것이다.
국내 산업자본은 은행지분을 4% 이상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제로 아예 배제됐다.
그 결과는 국내 은행의 '외국자본화(化)'로 이어졌다.
외국자본의 국내은행 총자산점유율은 지난 6월 말 현재 30.8%.작년 말 기준 미국(19%),일본(7%),독일(4%) 등 주요 선진국들의 외국자본 은행자산 점유율에 비해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산업부문에 대해서는 출자총액제한 등 세계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형 규제'를 고집하고 있는 정부가 금융산업에서만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맹종한 결과는 참담했다.
금융시장을 선진화시키기는커녕 멕시코 파나마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은행자산의 50% 이상을 외국자본에 넘긴 채 금융주권을 위협받기에 이른 국가들을 닮아가고 있다.
외환 제일 한미은행 등은 외국인에게 경영전권이 넘어갔거나 아예 합병돼 사라졌고 국민 신한 하나 등 유력 은행들도 외국인 지분이 절반을 넘은 상태다.
시중은행 중 토종자본은 정부가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우리금융지주 뿐이지만,그나마도 조만간 새 주인을 찾아 매각돼야 할 처지다.
국가신용위험이 커지고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질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금융자본의 '국적(國籍)'은 중요하다.
1997년 말 아시아 각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일본계 은행들이 대출금을 대거 회수했고,90년대 외국자본 진입이 많았던 아르헨티나에서는 2001년 예금동결 조치가 발생하자 프랑스계 은행 두 곳과 캐나다계 은행이 철수하기도 했다.
◆은행업 편중 갈수록 심화
이처럼 외국자본에 송두리째 넘어간 은행권은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을 투입받아 재무구조를 대거 개선한 반면 보험 증권 등 제2금융권은 푸대접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지원은커녕 신규영업 제한 등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그 결과 전체 금융자산에서 은행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말 38.5%에서 지난 6월 말 58.6%로 높아졌다.
게다가 은행들은 현금자동화기기(ATM) 사용료를 인상하는 등의 방법으로 손쉽게 수수료 수입 비중을 높이고 있다.
그 덕분에 은행들은 올해 당기순이익이 지난해(1조8천5백91억원)의 4배인 7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등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외국자본은 은행을 장악한 데 이어 국내 주식시장마저 좌지우지하고 있다.
1996년 말 13%에 불과했던 외국인 보유비중은 이달 초 현재 41%로 급증했다.
외국인들은 우량기업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면서 SK㈜를 압박했던 소버린자산운용과 같은 투기성 공격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그 때문에 기업들은 자본의 공격을 막는 데 돈과 시간을 허비하느라 설비투자가 위축됐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이 "KT 포스코 국민은행 같은 '국민기업'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게 좋겠다"고 말할 만큼 외국 자본의 국내시장 장악은 심각한 수준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