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5:19
수정2006.04.02 15:23
지난 4일 오전 11시쯤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사불산(四佛山) 대승사(大乘寺).일주문을 지나 축대를 오르자 대웅전 오른편에서 스님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온다.
오전 정진을 끝낸 대승선원(大乘禪院) 선객들이다.
새벽 2시에 잠을 깬 이들은 오전에만 7시간을 "의심 덩어리"를 붙들고 씨름했다.
동안거에 든 지도 벌써 16일째.무엇을 위해 이들은 의심 덩어리를 붙들고 있을까.
"뽕잎차인데,맛이 어떻습니까?"
"글쎄요,녹차보다 더 맑은 것 같은데요."
"그 말씀으로 차맛의 몇 퍼센트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뽕잎차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그 설명을 듣고 차맛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
"…"
점심 공양을 끝낸 뒤 차실에서 마주 앉은 이 절 주지이자 선원장인 철산(鐵山·49) 스님은 직접 만든 뽕잎차를 우려주며 선의 세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차맛을 아는 사람끼리는 눈만 끔뻑하거나 다리를 번쩍 들어도 서로 알아차린다는 것.그게 바로 석가모니가 꽃을 들자 가섭 존자가 빙긋이 웃었던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이치다.
그러나 차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에겐 아무리 설명한들 알 리 없다.
그래서 철산 스님은 "팔만대장경이 설명하는 불법(佛法)의 세계는 5%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선객들이 불철주야 참선에 드는 것은 바로 그 '차'를 직접 맛보기 위해서다.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죽령 서남쪽 40리 지점의 해발 6백m에 자리잡은 대승사는 신라 진평왕 때인 서기 587년에 창건된 고찰.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四佛岩)가 산꼭대기에 내려앉자 왕이 절을 세우고 스님을 모셨다고 한다.
법명도 전해지지 않는 이 스님이 입적한 뒤 마을 입구에 묻었더니 무덤에서 두 송이 연꽃이 피어올랐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래서 1929년 문을 연 대승사 선원의 이름은 쌍련선원(雙蓮禪院).대승선원 한켠에는 지금도 '天降四佛(천강사불)''地湧雙蓮(지용쌍련)'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전에도 대승사와 산내 암자인 윤필암 묘적암 등에서 수좌들이 정진하고 있었지만 선원이 개설되자 30여명이 참선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특히 지난 44년에는 성철 청담 서암 자운 스님과 비구니 묘엄 스님(봉녕사 승가대학장)이 함께 정진했고 금오 고암 월산 향곡 등 숱한 고승들이 대승사 선원을 거쳐갔다.
또한 성철 스님이 3년 동안 눕지 않고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용맹정진의 모범을 보인 곳도 대승사였고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 '밥 한덩어리에 김치 한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정진하다 깨달음의 빛을 본 것도 대승사에서였다.
"대승선원은 잠을 적게 자도 괜찮을 정도로 기운이 아주 좋습니다.
혼침(昏沈·정신이 몽롱한 상태)이 거의 없고 안개가 끼거나 장마철에도 답답하지 않아요.
그래서 선객들 사이에서는 문경 봉암사와 함께 한번쯤은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곳으로 통하지요."
이 때문에 대승선원은 방부(房付·입방신청)를 들이기가 쉽지 않고 정진 강도도 높다.
우선 하루 평균 10시간 정진을 기본으로 하는 여느 선원과 달리 하루 14시간 이상 가행정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새벽 2시부터 밤 11시까지 빡빡하게 수행시간표가 짜여 있어 잠잘 시간은 거의 없다.
아예 잠을 안 자는 사람이 적지 않고 주지 소임을 보면서 선객들과 함께 선방에서 정진하는 철산 스님의 수면 시간도 한시간 남짓이라고 한다.
안거 때가 아닌 때 실시하는 집중수행(산철결제)은 더욱 혹독하다.
21일 동안 아예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한다.
이 때에는 대개 50명가량이 와서 5명 정도는 견디지 못하고 탈락한다.
자리를 20분만 비워도 방석을 치워버리고 경책(警責)받는 태도가 좋지 않아도 자리를 빼버리기 때문이다.
선방 경력이 15년 미만인 선객들은 이런 산철결제를 거쳐야 다음 철 안거에 참여할 수 있다.
대승선원에 이런 가행정진 및 용맹정진 기풍이 자리잡은 것은 한동안 개폐를 거듭하던 선원을 지난 95년 당시 조실이던 월산 스님이 '대승선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열면서부터다.
선원 재개원과 함께 주지로 온 철산 스님을 중심으로 산철 용맹정진과 안거대중의 가행정진을 시작했다.
또 월산 스님이 거처하던 총지암에선 20시간,보현암에선 18시간씩 용맹정진했다.
지난 60년대 퇴경 권상로 선생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대승선원의 큰방 건물은 H자형의 독특한 모습이다.
정면 8칸에 건평 1백6평으로 40명가량이 정진할 수 있는 규모다.
이번 동안거에 방부를 들인 선객은 27명.구참 수좌들이 여럿 자리를 옮기면서 여느 때보다 수가 줄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30평짜리 팔작지붕 건물로 8∼10명이 정진할 수 있는 총지암도 이번 철에는 방부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묘적암에서는 선객 3명이,관음암과 문수암에서는 1명씩 가행정진 중이다.
선방의 정진 열기는 언제나 뜨겁다.
철산 스님은 "선방 수좌가 졸린다는 것은 긴장이 덜하고 아직 답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부도 직전의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 걱정하는 것처럼 이 공부를 얼른 끝내지 못하면 큰일난다는 다급함이 있다면 잠이 올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는 얘기다.
마침 철산 스님은 단식 중이라 물만 마시면서 정진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러다 건강을 해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받아친다.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오후 1시50분.오후 입선(入禪)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경내에 울려퍼지자 흩어졌던 스님들이 다시 선방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수좌들의 걸음걸이가 마치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것처럼 결연하다.
문경=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