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와 법학계에 있어서 2004년은 사법개혁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대법관 제청파문이 있었던 작년 8월 청와대와 대법원이 사법개혁을 공동 추진키로 한 합의에 따라 두달뒤 출범한 사법개혁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이어진 1년2개월간의 대장정속에서 한국의 사법시스템을 혁신하는 결과물들을 속속 내놓았다. 사개위가 의결한 개혁안들은 건의 형식으로 최종영 대법원장에게 전달되고 최대법원장은 이를 다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출, 최종안을 확정짓게 된다. 사개위 활동은 올 12월말로 종료되지만 내년에 사개위가 그려놓은 청사진을 현실화하기 위한 범국가적 실무추진기구가 대통령 산하에 설치돼 사법개혁을 완성하는역할을 담당하게 될 예정이다. ◇성과= 법조계와 법학계뿐만 아니라 국회와 교육부, 경제계, 노동계, 여성계,시민단체 등 우리나라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전문가 21명으로 구성된 사개위가 오랜산고끝에 내놓은 최대 결과물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결정이다. 95년 1월 대법원이 범행정부적으로 조직된 세계화추진위원회와 합동으로 `법조학제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시작된 법조인 양성제도 개선안 논의가 사실상 10년만에종착역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엄격한 인가조건을 충족시켜야 설립이 가능한 로스쿨에는 2008년에 첫 신입생이입학하게 되며, 대학의 `고시학원화'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사법시험제도는 2012년에 폐지된다. 최소 6학기(3년) 이상인 로스쿨 수업학기를 이수한 졸업생은 자격시험을 통해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게 되며, 합격률은 80% 안팎으로 조정될 예정이다. 사개위의 두번째 주요 성과물은 국민의 사법참여제 도입 결정이다. 일반 국민을 재판과정에 참여시켜 재판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높인다는 사법참여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사개위 논의과정에서 진작 형성됐지만 구체적으로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었다. 이에따라 사개위는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민사 대법정에서 실제 재판을 방불케하는 모의재판을 배심제와 참심제 형식으로 각각 실행해보는 등의 과정을 거쳐 일종의 `배심.참심 혼합형'을 선택하게 됐다. 즉,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희망하는 `중죄(重罪)' 형사사건의 경우 2007년부터일반 국민 5∼9명 규모의 `사법참여인단'(가칭)이 법관 3명과 함께 재판에 참여, 유.무죄와 형량에 대한 참고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이 사개위의 안이다. 사개위는 이처럼 과도적 형태인 사법참여제를 5년간 운영한 뒤 2010년께 법조계와 학계, 시민단체 공동으로 `국민사법참여위원회'(가칭)를 구성, 완성된 형태의 한국형 사법참여제 모델을 결정해 2012년부터 본격 시행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함께 사개위는 경력 5년 이상의 변호사.검사 등의 법관 임용을 해마다 늘려2012년까지 신규 임용법관의 50%를 이들 중에서 선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조일원화' 방안도 확정지었다. 또 `대법원 기능과 구성' 안건과 관련해서는 전국 5개 고등법원에 경력이 많은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된 상고부를 두어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건의 3심을 처리토록하는 `고법 상고부 설치'안을 다수 의견으로, 대법관 수를 현재 14명에서 20명 이상으로 늘리는 `대법관 증원'안을 소수 의견으로 각각 채택했다. 이밖에 사개위는 군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단급 이상 부대 단위에 소속된 군검찰을 국방부 소속으로 통합, 소속 부대장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 군사법제도 개선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망과 과제= 사개위가 합의한 개혁안들은 대체로 단순한 `선언' 수준을 넘어상당한 구체성을 갖추고 있다. 사개위는 그러나 개혁안에 세부내용까지 포함된 것은 아닌 데다 실제 개혁안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후속 기구가 필요하다고 보고 대통령 산하에 범국가적기구로서 관련 기관 및 단체가 참여하는 `사법개혁 추진을 위한 위원회'와 관련 실무기구를 두는 방안을 합의해놨다. 이런 합의에 따라 내년에 후속기구가 출범하게 되면 사개위에서 합의된 개혁안들에 살을 붙이고, 그 개혁안이 실행에 옮겨질 수 있도록 하는 작업과 함께 사개위가 장기 연구과제로 남겨놓은 안건들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사개위는 도입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였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노동법원 설치 등 적지않은 안건을 연구과제로 남겨놓았다. 또한 현행 형법체계에 대해서도 합리적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합의속에 정비가 필요한 규정들을 추려놓은 채 결론을 내리지않았기 때문에 이 역시 후속기구 등이 맡아야 할 과제가 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