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년 전인 지난 해 12월16일. 금융감독원에 '한나무 사모M&A전문 뮤추얼펀드'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펀드가 등록됐다. 자본금 1억원짜리 10개의 자(子)펀드로 구성된 사모펀드였다. 운용을 맡은 KTB자산운용은 연기금,외국계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투자 약속을 받았으며 향후 우리금융지주 등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직원이 물어봤다. "혹시 항간에 떠도는 '이헌재펀드'와 관련이 있습니까?" KTB자산운용 관계자는 "이 게 바로 그 펀드"라고 답변했다. 이헌재펀드가 처음 공식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헌재펀드는 그 후 이헌재장관의 입각으로 없었던 일이 돼버렸다. 그러나 그 구상의 시발은 국내 금융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금융만큼은 국내자본으로…" 작년 7월.막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김영재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전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은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당시는 김&장 고문)의 호출을 받았다. 사무실로 찾아간 김 회장에게 이 고문은 국내 금융산업 상황에 대한 자신의 걱정과 구상을 털어놓았다. 요지는 △외국계 펀드에 국내 은행을 매각했더니 기업금융이 위축되는 등 부작용이 많다 △주거래 기업만 14개(현재는 11개)나 갖고 있는 우리은행마저 외국인 손에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되겠다 △국내 자본으로 사모펀드를 만들어 우리금융을 인수하려 하니 자금을 모집해 보라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곧바로 국민 하나 등 시중은행과 대형 생보사,1백개 우량 대기업 등을 접촉,자금모집 활동에 나섰다. 김 회장에 따르면 금융권에서만 1조5천억원 정도 자금 모집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이 와중에 작년 10월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넘어가면서 이헌재펀드의 취지에 공감하는 '전주(錢主)'도 늘어났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직후 여신 50억원 이상 업체에 대한 론리뷰(여신점검)를 실시하는 바람에 금융권에 적잖은 파문이 인 것이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론스타가 론리뷰를 명분으로 기업정보를 빼내간다는 등의 비판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한나무펀드'로 명명된 이헌재펀드는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했다. 참여정부가 총선을 앞둔 올해 초 이 전 장관을 경제부총리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헌재펀드는 사모투자펀드(PEF)로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사모투자펀드 육성을 골자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개정된것.이에 김 회장은 독자적으로 칸서스자산운용을 설립했고 산업은행 우리금융 등도 사모펀드를 추진하고 있다. ◆IMF식 금융개혁에 대한 반성 최근 정부가 검토하고 있거나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금융정책은 IMF 직후 취해졌던 개방 일변도의 정책과는 궤도를 달리한다. 우선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인수합병) 방지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김석동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미국 유럽 등 다른 선진국에서도 국가 기간사업에 대해선 적대적 M&A 방어책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경부는 외부기관의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조만간 종합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재경부는 다른 한편으론 보건복지부 등과 협의를 거쳐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도 외국계 자본을 견제하는 데 가세했다. 그는 최근 "국내은행의 이사 자격요건으로 국적이나 거주지 등을 추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이사 숫자'를 사실상 제한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은 "미국 싱가포르처럼 자국 금융시장에 대해 어느 정도 안목이 있는 사람이 은행 임원을 맡도록 할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물론 이 같은 정부의 정책선회 움직임에 대해 외국언론에서는 "외국인 투자자에 비우호적인 분위기가 한국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 같은 비판을 어떻게 잠재우고 국내 금융시장과 금융회사를 육성해 나갈지 주목된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