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외자 망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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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표기업을 하나만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삼성전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과실을 누가 가장 많이 따먹었을까.
그게 궁금해 통계를 뽑아봤다.
기업가치를 따지는 기준은 많겠지만 시세차익을 통해 투자이익을 쉽게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가총액이 중요한 잣대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때 3조7천억원이던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73조8천억으로 늘어났다.
무려 70조원의 자산이 땅값 오르듯 올랐다는 얘기다.
이 회사 주주의 61%가 외국인이고,특히 외국인 비중이 98년 한햇동안 20%에서 50%로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적어도 30조∼40조원의 자산이 외국인 손으로 들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8천억원이 넘는 연간 배당의 61%도 고스란히 외국인 주주몫이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 직원들의 임금은 97년 한해 1조4천억원에서 지난해엔 2조7천억원으로 두배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부에 내는 세금도 연간 1조∼2조원선이다.
이같은 자산과 이익분배구조는 포스코 SK텔레콤 등 우리나라 우량 기업들 모두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상당액이 연금펀드라는 점에서,우리나라의 우량 기업들이 피땀 흘려 노력한 대가가 우리 국민들보다 외국 연금생활자들의 소득향상에 더 크게 기여했다고 보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자본시장이 개방돼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투자를 문제삼을 이유는 없다.
실제 외환위기 당시 당장 쓰러질 것 같은 나라를 구한 것은 외국자본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과도한 외자 유입이 오히려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통계를 하나 또 들어보자.외환위기 당시인 97년 기업과 가계대출 비중을 보면 제일은행(79% 대 21%)과 우리은행(80% 대 20%)이 엇비슷하다.
그러나 지난달 말엔 이 비율은 크게 달라져 있다.
우리은행은 54% 대 46%,제일은행은 30% 대 70%다.
외국인 지분이 낮은 우리은행은 기업대출이 절반 이상이나 외환위기 이후 가장 먼저 외국자본에 넘어간 제일은행은 30%로 뚝 떨어졌다.
외국계 은행들이 손쉽게 이익을 낼 수 있는 가계대출위주로 구멍가게식 장사를 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일반기업은 물론 국가경제의 심장인 금융산업이 외국자본으로 넘어가는 데 따른 폐해는 멕시코가 잘 보여준다.
두 차례에 걸친 외환위기로 주요 은행들이 외국계로 넘어간 이후 은행들이 제조업 투자를 기피하고 가계대출 등 소비금융에만 치중해왔다.
그 결과 제조업이 위축됐고,이는 고용악화와 소득감소로 이어졌다.
우리는 지금 자본이 부족한 시대가 아니다.
외환보유액이 너무 많아 걱정일 정도가 됐고,시중에 부동자금도 4백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때문에 이런 자본을 적극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에서 사모펀드도 만들고,연기금을 활용하거나 싱가포르투자청같은 국가펀드를 만들려는 것도 물론 그런 노력일 것이다.
문제는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점이다.
금융자본이니 산업자본이니 하면서 우리 자본의 손발을 묶어놓고,연기금 운용에 정부가 간섭할 것이니 아니니 하는 등 정치논리가 개입되는 탓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우리 기업들의 금융지배력을 축소하는 등 오히려 거꾸로 가는 정책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조만간 국내자본 활용방안을 만들지 못한다면 '외자 때문에 나라 망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다.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