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증권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기로 한 것은 유관업무 취급과 관련된 은행과의 차별을 해소,투자은행(IB)으로의 육성을 통해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엔 집중적인 지원이 이뤄진 반면 증권사에 대해선 여전히 과도한 제약이 가해짐으로써 금융산업이 불균등하게 발전,이로 인해 금융시장이 왜곡돼왔다는 지적에 뒤늦게나마 귀를 기울인 셈이다. 특히 부동산,신종 파생상품,투자 일임업 및 자문업 등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것은 증권사의 투자은행 변신을 가로막았던 족쇄를 일부나마 제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증권업계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나 정부가 증권산업에 대해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은 중장기적으로 증권업계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는 우선 기업 인수·합병(M&A)과 기업금융,조사 등에 강점을 갖고 있는 대형 증권사를 투자은행으로 육성한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대형 증권사들을 정부 및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IB시장에서 우대,경험을 쌓도록 함으로써 향후 중국이나 동남아 금융시장 진출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중소형 증권사는 위탁매매나 장외파생상품 등 일부 영역에 특화된 증권사로 바꿔나가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재정경제부는 16일 발표자료에서 "장외 파생상품 취급요건을 완화함으로써 이 부문에 특화된 중소형 증권사의 출현을 유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증권사끼리 M&A를 진행하거나 자진해서 퇴출을 결정할 경우 세제지원 등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46개 증권사가 특징 없이 주식 위탁매매에 매달림으로써 증권업계가 고사상태에 빠져드는 것을 막고,자본시장을 육성한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은행과의 차별 해소에 '시동' 재경부는 이날 내놓은 자료를 통해 은행과 증권사간 차별적 규제의 결과가 심각한 수준임을 인정했다. 증권회사 영업수지율은 지난 99년 1백62%였으나 2001년 1백3%로 떨어졌고,작년엔 89%로 급락했다. 영업수지율이 1백%를 밑도는 것은 사실상 적자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또 평균 자산규모도 은행은 99년 17조4천억원에서 지난해 57조5천억원으로 급증한 반면 증권사는 8천억원에서 1조1천억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재경부는 이에 따라 은행 등에 허용돼 있는 신탁업무를 증권사에도 허용,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위해 가입하는 자사주펀드를 유치할 수 있도록 했다. 증권회사는 또 재산신탁과 향후 퇴직연금의 자산관리업무도 허용돼 자산관리 부문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재경부는 증권업계의 숙원인 일임형 랩어카운트의 포괄주문 허용도 검토키로 했다. 현재는 개별주문이 가능해 일임형 랩의 추가 성장이 멈춘 상태다. ◆투자은행 도약 기반 마련 증권사의 부동산 업무에 대한 제약도 큰 폭으로 풀린다. 이에 따라 기업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내놓은 부동산을 증권사가 사들이거나 제3자가 매입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는 모건스탠리나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투자은행에는 모두 허용된 업무다. 증권사는 또 개별주가연계채권(ELN) 환율연계채권 등 다양한 파생결합증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최상목 증권제도과장은 "파생결합증권을 광의로 해석해 실물에 연계한 파생결합증권도 허용해 줄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대출이나 채권의 위험을 유동화시키는 신종 상품인 신용파생상품 취급이 허용되며 장외파생상품의 취급 요건도 대폭 완화된다. 재경부는 증권사의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 일임업 및 자문업의 수수료 한도를 폐지했으며 투자분석 보고서도 유료화할 수 있도록 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