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城麟 <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 올 한해 우리 경제를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몇십년만에 맞은 세계경제의 호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70년대 이래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던 수출 호조세를 내수로 연결시키지 못한 채,주저앉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기업들은 바깥에서 세계 일류기업들을 상대로 사력을 다해 경쟁할 때 우리 정부는 안에서 그들의 발목을 잡는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4·15 총선 승리와 대통령 탄핵안 기각이라는 절호의 반전 기회를 정치 싸움질하느라 마냥 흘려 보냈다. 2004년 한해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다수 여당을 가지고도 경제를 망가뜨려 놓은 것 외엔 제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는 정부에서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공직이 철밥통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가 보다. 작년의 부끄러운 3.1% 성장에 이어 올해 모든 경쟁국들이 평균 7.7% 이상의 고도성장을 구가할 때 겨우 4.7% 성장에 그치고 90만명의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 없이 꽃다운 청춘을 허비하고 매달 5백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파산하고 있는데 누구하나 죄송하다거나 책임지는 자가 없는 것이다. 경제부처 관료들은 아마도 정치권이 앞장서 경제심리를 꽁꽁 묶어놓은 상황에서 나름대로 모든 가능한 경기부양책을 소진하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대통령과 정권은 나라의 체질을 바꾸어 놓으려는 개혁 난리에도 불구하고 이정도 경제를 끌고 왔으니 이헌재 경제팀이 고마울지도 모른다. 과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래는 어떠한가. 그동안 우리 경제를 떠받쳐 왔던 수출마저 세계경제의 하락과 달러환율 급락으로 현저히 둔화됨에 따라 내년 우리 경제는 4%의 성장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질 전망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제정책으로는 이 무기력증을 치유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는 나라는 슬픈 나라다. 그러나 이 동토와 같은 경제에서 아직 희망의 싹을 본다. 아무리 무능하고 철없는 과객들이 나라를 농단하고 발목을 잡아도 세계를 상대로 꿋꿋이 경쟁해 수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자랑스런 기업들이 있다. 하향평준화를 강요하는 교육제도에 대항해 집을 팔아서라도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세계최고의 교육열이 있다. 최근 들어 노조도 정신을 차리는 조짐이 보이면서 쟁의건수가 줄어들고 5년 이상 줄어들기만 하던 외국인 투자도 올해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1년 이상 줄어들기만 하던 국내 설비투자도 지난 2분기부터 조금씩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아직은 여리디 여린 이런 희망의 싹을 짓밟지 말고 튼튼히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가 어렵더라도 미래에 희망이 보이면 기업들은 투자를 하고 소비자들은 소비를 시작할 것이다. 참여정부는 왜 독선과 고집으로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진보적 개혁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지난 2년동안 나라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고 경제를 어렵게 했으면 이제 한번쯤 열린 마음으로 되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제발 새해에는 한편으론 경제심리를 죽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온갖 편법적인 경기부양책을 동원해 경제를 살리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온갖 편법적인 경기부양책이 효과가 없으니 이제 연기금까지 동원해 건설경기를 부양하려는 궁색한 꼴을 보이지 말았으면 한다. 지난 2년동안 항상 그랬듯이 우리 경제를 살릴 쉽고 확실한 길이 있다. 그것은 열심히 하는 국민과 기업을 북돋워주고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신명나게 일하고 소비하고 투자를 시작할 것이다. 그 때 적절한 경기부양책을 쓰면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우리경제는 활활 타오를 것이다. 참여정부는 왜 그들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노사모와 386만이 우리 국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