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5:32
수정2006.04.02 15:34
< 조헌제 대한송유관공사 CEO chohj@dopco.co.kr >
어머님께서 깨끗이 다려 입혀주신 옷을 입고 아버님을 따라 나선다. 아버님은 내게 무언가 가르치고 싶을 때면 언제나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웃어른께 인사하는 법에서부터 앉을 때의 자세,말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아버님 친구분 생일잔치에도 간적이 있다.
어느 어른께서는 아들이 판사가 되고 딸은 3대 독자집에 시집가서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이야기,오늘 이 거창한 생일잔치는 부인의 극진한 사랑으로 차려졌다면서 이 친구가 얼마나 행복한 친구인지 모른다는 등의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린 생각에 행복이란 이런거구나 싶었다.
학창시설 추운 날씨에 몸을 움츠리고 부유한 집 앞을 지나면서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하며 깊은 상념에 빠지곤 했다.
잘산다고 행복한걸까? 가난하다고 불행한걸까? 행복이란 무엇인지,어디에 있는지 마테를 링크의 파랑새를 생각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군 훈련기간 중 부대 밖 한가로운 농촌 길을 거니는 청춘남녀의 행복한 모습,1백리 행군 중 논두렁에 앉아 탁주를 들이키며 밥 먹는 농부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했다.
상황과 처지에 따라 행복의 잣대와 기준이 달라지는 듯 자꾸만 미로로 빠져드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생각에 따라,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게 행복일까? 학창시절의 행복에 대한 의문이 대학을 졸업하고 군생활을 끝낼 때까지도 풀리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고,인생을 한참 살아왔어도 그 의미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남들처럼'행복이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에 관한 칼 부세의 시가 생각났다. '저 산 넘어 또 넘어 저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 말하기에 남들 따라 나 또한 찾아갔건만 눈물지으며 되돌아 왔네'.
행복이란 찾아 나서기보다 내 안을 관조할 때 보이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행복한 삶이란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그 일을 자기 능력껏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또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능력껏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