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18세 소녀 소피가 마녀의 저주 탓에 할머니로 변한 뒤 마법을 풀기 위해 모험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부모의 마법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소녀를 그렸던 그의 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유사한 설정이다.


두 작품의 주인공 소피와 치히로는 왕자가 마법을 풀어줘야 했던 서양동화 속 '백설공주'와 달리 낙관적이며 능동적인 성격의 현대적 인물이다.


이야기의 골간을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에는 '센과…'처럼 일상과 환상이 교묘하게 포개져 있다.


치히로가 온천장 하녀 센으로 바뀌었듯 할머니로 변한 소피는 청소부로 새 생활에 적응한다.


소피가 막다른 골목으로 쫓기다가 마법사 하울의 도움으로 비상하는 모습은 SF영화 'ET'에서 어린이가 ET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공중으로 뜨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불가능한 꿈이 영화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감독은 '하울…'의 주제와 장면 구성에서 전작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한다.


일본의 전통 설화에 뿌리를 뒀던 '센과…'은 다소 어둡고 무시무시한 캐릭터와 비대칭적인 장면 구성으로 공포감을 자아낸 반면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판타지소설을 옮긴 '하울…'은 아름다운 유럽 풍광을 세밀하게 그려내 관객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기묘한 모습의 움직이는 성,각종 모자들이 진열된 상점,눈부시게 아름다운 스위스의 산하와 지중해 연안,프랑스의 화려한 궁전 등이 어우러져 있다.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중 처음으로 남녀간의 사랑을 정면으로 다룬 것도 이채롭다.


소피의 얼굴은 심리상태에 따라 10대에서부터 90대까지 변화한다.


사랑이 충만할 때 저주가 풀리고 제 모습을 찾는 대목에서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일체유심조'의 동양사상이 자유자재로 얼굴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애니메이션 장르의 특징에 실려 표현된다.


선악의 이분법 잣대에 익숙한 서구 애니메이션과 달리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도 녹아 있다.


소피가 자신에게 마법을 걸었던 마녀를 포용하는 등 서양을 무대로 동양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멋쟁이지만 소심한 하울,불꽃 악마 '캘시퍼',외발로 통통 뛰어다니는 허수아비,철없는 마녀 등 개성적인 캐릭터들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개는 전작에 비해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23일 개봉,전체.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