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올해의 상황을 압축한 한자로 괴로울 '고(苦)',키워드로 '양극화'가 꼽혔다고 한다. 한국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이 금융기관장 기업CEO 민·관 연구원장 법무·회계법인대표 대학교수 등 한국의 여론주도층들이 모인 한경 밀레니엄포럼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되돌아본 2004년'에서 나온 결과다. 언제 힘들지 않고,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있었을까만서도 올해는 유독 신산한 날들로 점철된 한 해였다. 청년실업의 심각성은 '이태백'이라는 기막힌 말을 만들어냈고,구조조정 바람은 한창 일해야 할 50대를 거리로 내몰았다. 내수 부진에 상가는 텅텅 비고 택시는 길마다 줄지어 서있더니 마침내 어린이가 굶어죽는 일까지 생겼다. 오죽하면 한국갤럽이 조사한 새해 '개인 소망'으로 '가계소득 증가'(38%)가 1위를 차지,줄곧 1위였던 '본인·가족의 건강'(26%)을 앞지르고,52%가 국가적 소망으로 경제활성화를 내세웠을까. 게다가 세대·계층간 갈등은 상대의 입장을 감안하기는커녕 내 편이 아니면 얘기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끔찍한 양극화 현상을 낳았다. 오늘은 동지(冬至)다. 옛사람들은 동지를 태양이 죽었다 살아나는 날로 여겼다. 이 날 이후부터 해가 다시 길어지기 때문이다. 중국 주(周)나라에선 동지를 설로 삼았고,동국세시기에도 작은 설로 기록했다. 동짓날 팥죽을 쑤고 뱀 사(蛇)자를 써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인 건 더이상 악귀가 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항간에선 동지가 지나면 새해 운세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아직 밤은 길고 봄은 먼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어쩌랴.음의 기운은 사그라들고 양의 기운이 싹튼다는 동짓날,팥죽과 달력을 나누고 푸슈킨의 시도 되뇌이면서 새해엔 좀더 살기가 좋아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