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끊임없는 구조조정으로 중도 퇴직한 사람들이 앞다퉈 분식점 창업 등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이 주요국들 가운데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한동안 빠르게 떨어지던 전체 취업자 대비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무급 가족종사자) 비중이 대량 해고 한파가 몰아쳤던 1998년을 기점으로 35%안팎에 멈춰서면서 불안한 취업구조를 지속하고 있는 것.경기가 침체할 경우 임금근로자보다 자영업자들이 더 큰 타격을 입게 되고,이로 인해 소비심리가 다시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은 자영업자 강국? 지난 80년대 초반 50%를 웃돌던 전체 취업자 대비 비임금근로자 비중은 90년대 들어 30%대 중반으로 떨어진 뒤 △2000년 35.6% △2002년 34.7% △2004년10월 34.2% 등 최근까지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비임금근로자 가운데 농림수산업 종사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자영업자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업종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11월 중 농림어업 취업자는 1백82만명으로 4년 전 2백24만명에 비해 20%가량 감소했다. 이 같은 비임금근로자 비중은 미국(7.6%·2003년 기준) 일본(15.1%) 영국(12.7%) 등 선진국은 물론 한국과 경제수준이 비슷한 대만(23.6%)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날수록 자영업자 비중이 줄어드는 게 일반적인데 한국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기댈 곳은 자영업뿐 외환위기 이후 대량실업 사태와 고용불안이 확산되면서 비임금근로자가 급증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법이 '생계형 창업'이었던 것. 산업구조의 변화로 제조업의 고용흡수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도 치킨집이나 김밥집 주인을 늘린 요인이다. 지난 11월 현재 전체 취업자수는 4년 전에 비해 5.9% 늘었지만 제조업 취업자는 오히려 같은 기간 10만명(2.3%) 감소했다. 국책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인구 밀도가 높아서 구멍가게와 식당이 빼곡히 들어차도 그런대로 먹고살 만하다는 것도 자영업자를 늘리게 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임박한 자영업 구조조정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과잉상태에 있는 자영업자 비중이 상당부분 줄어들어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거시경제를 책임지는 재정경제부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달 초 "높은 자영업자 비중이 경제 고도화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현재 가사 종사자를 포함해 40%대에 육박하는 자영업자 비율이 선진국 수준으로 낮아질 때까지는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작은 상점의 주인이나 농사짓던 사람이 대형 할인점 종업원 등 임금노동자로 바뀌어야만 큰 부침없이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이원기 메릴린치증권 전무도 "한국은 한 집 건너 빵집이고 두 집 건너 음식점인데 이는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며 "최근 들어 체감경기가 크게 위축된 것도 이 같은 서비스업에서 탈락한 개인들의 고통이 부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